카테고리 없음

연중 제25주일 나해(마르 9, 30-37) 섬겨라

세심정 2024. 9. 21. 12:55

지난 주일 복음은 베드로가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 부활을 예고하시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이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영광과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는 것,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우리는 마침내 자기를 버릴 것이므로 너무 걱정하지 말고 버리는 연습을 하고, 십자가를 지고 넘어져도 주님께서 세 번씩이나 넘어지셨음을 생각하고, 삼천, 삼만 번 넘어져도 괜찮으니,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제1 독서는 의인들을 모욕하고 고통을 주며 죽이기까지 하면서 하느님과 의인들을 시험하는 악인들의 악한 마음에 대해 말하며, 2 독서는 욕정을 채우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지혜를 구하여 평화와 관대, 유순과 자비 등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가르침이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며, 어린이처럼 되라는 가르침이다.

 

갈릴래아 지방을 떠나 피신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높은 산에 오르시어 기도 중에 힘을 얻으시고, 제자들도 천국 영광을 체험하도록 하심으로써 힘과 용기를 주신 다음, 당신께서 활동하시던 카파르나움으로 돌아오셨다. 예수님께서는 밤의 어둠처럼 소리 없이 밀려드는 죽음의 그림자를 피부로 느끼고 계셨다. 수난과 죽음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당신 자신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셨다. 밀려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당신께 드리울 때, 주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도 당신 뒤를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함을 가르치셔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지내시면서 당신의 수난, 죽음과 부활에 대해 두 번째로 제자들에게 예고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도 못했고, 이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두려워했다. 제자들은 여전히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에 대해 세 번씩 예고하셨어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오른쪽, 왼쪽에 앉게 해주시기를 청할 정도로(마르 10, 37)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고를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아듣지 못했으면 질문이라도 해야 했는데, 질문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질문하지 않았다.

곰곰이 묵상하면, 제자들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우리도 수난과 죽음, 십자가를 싫어한다. 이에 대해 말하기조차 꺼린다. 죽음 후의 부활도 상상조차 하지 않으며, 지금 이 세상 사는 것만 생각한다. 건강, 기쁨, 행복, 재물, 영예, 존경 등, 현실적인 것만을 생각한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있어도, 죽음을 생각하기를 꺼리고, 살 것만을 생각한다. 천국 영광을 그리기보다 지상 복락을 구하곤 한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기억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가르치시지만, 우리는 사는 것만 생각하고, 십자가 대신 존경과 영광만을 생각한다. 오늘 우리가 첫째로 묵상할 점이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을 가로질러 가시면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묵상할 수 있도록 아무 말씀도 건네지 않으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묵상하기는커녕 자기들끼리 누가 가장 크고 높은 제자인가를 가지고 따지며 걸었다. 예수님의 말씀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이처럼 자기 생각에만 빠져, 사는 것만, 영광과 존귀만을 생각하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 드디어 목적지인 카파르나움에 이르시어 집에 들어가신 다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라고 물으셨다. 제자들은 자기들끼리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다투었기 때문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둘째로 묵상할 점이다. 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 것만 생각하고 나만 생각하면, 그래서 나의 부귀와 존귀, 영광과 영예만을 생각하고 살면 주님 앞에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한 것들은 세상 사람 모두가 하는 말이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 뽑힌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 16)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주님께 뽑힌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며, 주님의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님께 드릴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만 하지 말고,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 뜻을 따르며 실행하여 열매를 맺자.

 

이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치셨다. 봉사와 섬김의 가르침이다. 사랑이 큰 사람이 봉사하며 섬긴다. 가장 먼저 나온 가지가 가장 밑에서 자라나며 다른 가지들이 위에서 자라나도록 한다. 활활 타는 연탄이 밑에서 불을 붙여주어야 새 연탄이 불이 활활 붙는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크고 활력이 넘치는 사람만이 섬기며 봉사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섬김과 봉사가 곧 첫째가 되는 길이라고 가르치신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껴안으시며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어린이란 보잘것없고, 미숙하고, 엄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낮은 자다. 부모 없이 떠돌며, 먹지 못해 뼈와 가죽만 남고, 씻지 못해 썩은 냄새가 나는 그런 어린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어린이를 데려다가 꼭 껴안으시며, 그 어린이가 곧 당신이라고 가르치신다. 헐벗고 굶주리며 병들고 감옥에 갇힌 사람이 곧 당신이라고 가르치신다(마태 25, 35-36). 하느님 모습으로, 하느님 숨결로 창조된 사람은 누구나 그 자체로 소중하다.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당신께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차별하지 말고, 모든 이를 소중히 대해야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만물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다.

 

존경과 영광만을 생각하지 말고 수난과 죽음, 십자가를 생각하자. 그리스도를 닮아 사랑으로 봉사와 섬김을 실천하자. 보잘것없는 사람, 감옥에 갇힌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모두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며, 그가 곧 그리스도이다. 모든 이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며, 나아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만물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