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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 나해(마르 13, 24-32) 메멘토 모리

세심정 2024. 11. 15. 17:18

지난 주일 복음은 율법 학자와 가난한 과부에 대한 말씀이었다. 하느님 말씀을 익히고 가르치며 보전하는 율법 학자는 하느님 말씀을 거스르고 자기 이익을 위해 불의를 저지르지만, 하느님 말씀을 잘 알지 못하는 과부는 하느님이 전부였기에 자기를 포기하고 하느님께 가진 것을 모두 바쳤다.

오늘 제1 독서는 세상 종말에 있을 구원과 멸망에 대해 말하며, 2 독서는 그리스도께서 단 한 번의 제사를 통하여 성부 오른쪽에 앉으시어 구원하셨음을 말한다. 복음은 종말이 언제 올지 모르니 준비하라는 가르침이다.

 

교회력으로 다음 주일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주일이므로, 오늘 교회는 세상 종말에 관한 하느님 말씀을 듣는다. 주님께서는 세상 종말, 우주의 종말에 대해서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자연재해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의 아들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무렵,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이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고대에도 화산 폭발과 지진, 해일 등의 여러 가지 자연재해로 인해 많은 도시가 멸망했다. 기원 79년 사라진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에 묻혀 버렸고, 기원 36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지진 해일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화산 폭발 때 품어져 나온 화산재는 오랫동안 공중을 떠돌며 해와 달을 가려 어두워지게 했고, 내려앉은 화산재는 과일과 곡물의 성장을 방해했으리라. 이로 인해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고, 간접적인 피해도 엄청났으리라.

233, 동아프리카 지역에 위치한 케냐 나이로비에서 깊이 약 15m, 너비 약 20m의 균열이 생겨 갑작스럽게 두 동강 난 집도 있고, 하루아침에 마을이 둘로 갈라져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지반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갈라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판단했다. 지각판의 이동으로 아프리카 대륙이 둘로 갈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케냐 현지 매체인 데일리네이션은 지질학자의 의견을 인용해 동아프리카판이 분리되고 있다고 전했다. 지질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케냐와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이 위치한 동아프리카 지역은 아프리카 전체 대륙과 땅속에서 분리돼 있다. , 이곳이 지각판의 경계 지점이라는 뜻이다. 동아프리카판이 1년에 약 2cm가량 북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점차 아프리카 대륙이 둘로 갈라지는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당장 대륙이 쪼개지지는 않겠지만, 5천만 년 후에는 동아프리카판이 완전히 분리돼 새로운 대륙이 생겨나리라고 예상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이런 자연재해를 통해서 종말에 대해 설명하셨다. 오늘 복음 전 대목을 보면 그 무렵에 환난이 닥칠 터인데, 그러한 환난은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창조 이래 지금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13, 19)라고 말씀하실 정도이다. 그러니 노아의 홍수나 바벨탑 사건보다 더 큰 재앙이 닥치리라고 예언하신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종말을 잘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주의 종말이든, 개인의 종말이든 우리는 모두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속으로 아직은, 아직은 아니야, 아직 괜찮을 거야. 나에게 죽음은 아직 멀었어.’라고 생각하겠지만, 죽음은 언제 올지 모른다. 불시에 죽음이 닥칠 수 있다. 이때 죽음을 잘 맞이하도록 준비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축복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 좋지만, 축복받으며 사는 것이 더 좋고, 축복받으며 죽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므로 죽음을 잘 준비하여 축복 속에서 죽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 나에게 피해와 상처를 준 사람들, 그래서 지금까지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 이들을 과감히 용서하자. 용서란 마음의 정리다. 내 마음속에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놓아주고, 떨쳐버리며, 잊어버리는 것이다. 상처받은 내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는 것이다. 그렇게 용서해야 내 마음이 편하고, 죽음을 잘 준비하여 축복 속에서 죽을 수 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다니 7, 13)’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이란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를 가리킨다. 이는 구세주의 초월성과 인간성을 강조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구름은 하느님의 현현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이다. 즉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로서 종말에 권능과 영광을 가지고 재림하시리라는 약속이다. 더욱이 주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님의 선택된 백성이다.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다. 주님께서 권능과 영광을 누리시면, 교회인 우리도 권능과 영광을 누린다. 종말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종말을 적극적으로 기다려야 한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이라고 기도하면서 주님을 적극적으로 맞이하기 위해 기다려야 한다. 주님의 권능과 영광을 함께 누리기 위해 종말을 향해, 죽음을 향해 힘차게 걸어가야 한다. 죽음을 슬퍼하지 말고, 기뻐해야 한다. 죽음은 축복이다. 죽음을 통해 천국 복락을 누린다. 그래서 성인들의 축일을 죽은 날로 정한다.

18974월 말경 스물넷 젊은 리지외의 데레사는 매일 아침 각혈을 했다. 결핵 말기에 이른 그녀는 밤이 되면 특히 기침이 심해져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897930일에 하느님께 받은 숨을 돌려드리는데, 그는 곧 죽음을 맞을 것을 인식하면서 말한다. “나를 찾아오게 될 것은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이에요.” 데레사에게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기를 데리러 오시는 것이다. 이런 죽음 의식을 갖고 있던 그는, 언니 수녀들이 그가 죽어서 자신들 곁을 떠나는 것으로 여기며 아파할 때, 자기가 죽음을 맞으면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실제적으로 언니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을 위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깨워 준다. 데레사가 죽음을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을 깊게 신뢰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핵으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동안에도 하느님에 대한 신뢰 속에서 살았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하느님 은총의 작용으로 알고 살았다. 그가 관심을 갖는 유일한 것은 이런 신뢰 속에서 하느님이 바라시는 일을 하는 것이다(가톨릭 신문 241117일자).

우리도 성녀 소화 데레사처럼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날 것임을 굳게 믿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자. 천국 복락을 향해 나아가자.

 

셋째, 무화과나무의 가지와 잎을 보고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을 알 수 있듯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을 보고 종말이 오는 것을 깨달으라고 가르치신다.

내 주변, 내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보고 주님을 만날 날이 가까이 왔음을 알아야 한다.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늙어가는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절대 늙거나 아프거나 병들지 않을 줄 알았다. 늘 총기가 좋을 줄 알았고, 항상 잘 보고 잘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프고, 병들고, 쉽게 잊어버리고, 눈이 침침하고, 잘 듣지 못한다.

어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임자, 오늘 저녁 무슨 국이야?”라고 물었는데 대답이 없더란다. 그래서 또 묻고, 또 물어 세 번이나 물었는데도 대답이 없어서 화를 버럭 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내가 콩나물국이라고 세 번이나 말했잖아! 몇 번이나 더 말해.”라고 화를 내더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말씀을 듣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많은 어르신께서 성당에 미사 참석하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이 잘 들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얼마나 답답하시겠는가! 잘 들리지 않고, 눈이 침침해서 잘 보이지 않고, 우리는 그렇게 늙어간다. 그렇게 늙어가면 종말이 가까이 온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귀먹거나 병들거나 늙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마라. 우리는 익어만 가는 것이 아니라 늙어간다. 무엇이든지 익으면 떨어지게 되어 있다. 떨어짐을 야속하게 생각하지 마라. 우리는 지상에서 떠나야만 하고, 천상으로 가야만 하는 나그네이다. 나그네임을 기억하라.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주님 말씀은 영원하므로 주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라고 말씀하신다.

우주의 종말도, 나의 종말도 알 수 없다. 그러니 언제 종말을 맞더라도 기쁘게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열 처녀의 비유에서 모두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하여 등잔에 불을 켰고, 신랑을 기다리다가 졸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들어가지 못했다. 모두가 졸았고, 잠이 들었는데, 다섯만 들어가고 다섯은 들어가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다섯 처녀가 기름을 빌려달라고 청했는데, 기름을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죽음은 개인이 준비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대신 준비해줄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러니 죽음을 준비하라.

 

중세의 유명한 신학자요 철학자인 에라스무스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고 말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나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니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라.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며, 축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