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왕 대축일 나해(요한 18, 33ㄴ-37) 왕답게 살자
지난 주일 복음은 종말에 관한 말씀이었다. 축복 속에서 세상을 잘 떠나기 위하여 용서로 마음을 정리하자. 세상을 떠나는 것은 축복이며 하느님의 권능과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이므로 기쁘게 떠나도록 준비하자. 우리는 지상에서 떠나야만 하고, 천상으로 가야만 하는 나그네임을 기억하자. 위령성월을 보내면서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며, 축복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제1 독서는 사람의 아들이 모든 민족과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리라는 예언이며, 제2 독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알파요 오메가로서 영원 무궁히 다스리신다는 말씀이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심문받으시는 대목이다.
교회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주일인 오늘을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 왕 대축일’로 정하여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널리 전파하며 기념하고 공경한다. 예수님께서는 백성을 지배하고 억누르는 왕이 아니라, 백성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하며 섬기는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다.”(필리 2, 6-11)
먼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누리의 왕이시다. 그리스도의 몸이며 각 지체인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이다. 예수님과 우리는 머리와 몸이므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온 누리의 왕이시므로 몸이며 지체인 우리도 온 누리의 왕이다. 그러므로 내가 왕임을 깨닫고 자긍심, 자부심을 지니고 왕답게 살아가야 한다. 왕으로서의 품위를 지니고 살아야 한다. 왕이 왕답지 않고 천민과 다를 바가 없다면 어떻게 백성을 이끌어 가겠는가? 왕은 백성을 이끌 덕망이 있어야 하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고결한 인품을 지녀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왕다운 왕이 되도록 덕을 기르고, 고결한 인품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스러운 언어를 사용하지 말자. 자기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왕으로서 왕답게 덕을 베풀자.
둘째, 그리스도 왕은 세상의 왕과 다르다. 세상의 왕은 백성을 지배하고 억누른다. 그러나 그리스도 왕은 자신을 비우시어 온전히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종이 주인에게 하는 것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그리고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요한 13, 14-15)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 왕은 지배하고 짓누르는 왕이 아니라, 봉사하는 왕이다.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희생하며 키우듯이, 자신을 바치고 희생하는 왕이다. 그래서 왕직은 봉사직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랄 때까지 보살핌을 받고 우쭈쭈쭈하면서 떠받으면서 자랐다. 그래서 대부분이 받들기보다 받들어지기에 익숙하고, 베풀기보다 받는 데 익숙해져 있다. “떡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 이것이 우리의 속성이다. 은근히 받기를 기대하고, 받지 않으면 섭섭하다. 하느님께서도 그런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신다. 그러한 우리를 위해 당신 외아들을 보내시어 우리 대신 죄를 기워 갚도록 하셨다. 우리의 발을 씻어주시도록 하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도 당신처럼 발을 씻어주라고 가르치셨다.
이제 우리가 왕이며, 우리가 또 하나의 그리스도이므로, 우리가 이웃의 발을 씻겨주어야 한다. 그리스도 왕께서 우리 발을 씻겨주시며 희생과 봉사를 하셨으니, 우리도 그리스도 왕을 닮아 이웃의 발을 씻겨주는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 주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일 따름이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므로 세상일에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 손해 보고, 조금 부족해도, 너그러이 넘어가야 한다. 어차피 모든 것은 놓고 간다. 조금 더 가지거나 부족해도 내 것이 아니므로 아쉬워하거나 안달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라고 말씀하셨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계속하여 왕이냐고 물었다. 그의 관심은 하느님 나라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다. 오로지 세상의 왕, 이 세상 권력에만 관심이 있다. 예수님의 관심사는 세상 권력이 아니다. 진리다. 하느님 말씀이다. 하느님 나라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고,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자. 그리하여 영원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자.
오늘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맞이하여, 나 자신이 왕임을 자각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왕으로서, 왕답게 살자. 왕으로서 백성에게 베풀고 헌신하며 살자. 하느님 나라가 우리나라이므로 이 세상의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진리,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여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