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일 다해(루카 3, 1-6) 하느님 말씀의 때
지난 주일에는 대림이란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를 찾아오심이며, 우리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마중 나가는 것이고, 그때는 구원의 때이며, 구원을 기다리기 위해 깨어 기다리자는 말씀, 주님을 잘 맞이하기 위해 판공 성사를 통해 마음을 준비하고, 평일 미사에도 잘 참여하여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제1 독서 바룩서는 하느님의 자비로 예루살렘이 재앙에서 벗어나 영광을 누리리라는 예언이며, 제2 독서는 필리피 교우들이 의로움의 열매를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기를 비는 사도 바오로의 기도이다.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이사야 예언서에 따라 구원을 선포한다는 말씀이다.
복음사가 루카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시대에,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있었던 때, 헤로데 안티파스가 갈릴래아의 영주(분봉 왕), 헤로데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었고, 한나스와 카야파가 예루살렘 성전의 대사제로 있었던 때라고, 그 시기를 자세히 말한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하느님 말씀이 요한에게 내렸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요한에게 하느님 말씀이 내린 때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리스인들은 때를 크로노스와 카이로스로 구분한다. 크로노스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물리적 시간에 삶의 의미와 가치가 접목된 개인의 특별한 시간이다.
요한은 하느님 말씀을 듣기 전까지 광야에서 오직 하느님과 하나 되기 위해 살았다. 광야의 혹독한 기후를 이겨내고, 악의 유혹을 물리치며 하느님의 사람으로 하느님과 만나고,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과 함께 살기 위해 광야에서 살았다. 이를 위해 사제직까지 포기하고 광야로 왔다. 그에게는 하느님이 전부였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이 그에게 내리자, 그는 지금까지 추구했던 광야의 삶을 포기하고,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하느님 말씀이 내리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랐다. 사람들을 피해 오직 하느님과 함께하기 위해 광야에 들어간 그가 하느님 말씀이 내리자 광야를 떠나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것이다. 말씀은 그를 변화시켜 사람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며 세례를 베풀었다.
하느님 말씀은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묵시 22, 13). 하느님 말씀은 사람을 변화시켜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한다. 하느님 말씀으로 인해 교회 역사 안의 많은 성인이 변화되었고 새로운 삶을 살았다.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만나 사도가 되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집어라. 읽어라.”라는 어린아이의 소리에 성경을 펼쳤는데,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로마 13, 13-14)라는 말씀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암브로시오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성인이 되었다. 1205년 성 프란치스코는 페루자 정복을 위한 브리엔 백작 발터 3세의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주인을 섬기겠느냐? 아니면 종을 섬기겠느냐?”라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아씨시로 돌아갔고, 산 다미아노 성당에서 “허물어져 가는 내 집을 수리하여라.”는 말씀을 듣고 가난과 겸손, 순명의 삶을 살았다.
이처럼 하느님 말씀은 삶을 변화시킨다. 그때가 곧 카이로스의 때이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첫째로 묵상해야 할 점이다. 교우님들도 이 카이로스의 때를 체험하셨으리라. 과연 내 삶을 변화시킨 때는 언제였는가? 그 체험, 그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세례자 요한이나 많은 성인처럼 하느님 말씀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나아가 계속하여 하느님 말씀이 우리에게 내려 그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청해야 한다.
둘째, 하느님 말씀을 들은 세례자 요한은 죄를 용서하기 위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말씀이 내리기 전에 그는 오직 하느님과 함께하면서 하느님 안에 머무르려고만 했다. 말씀을 들은 다음 그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지방을 다니면서 세례를 베풀고 하느님 말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말씀은 그를 하느님 말씀의 선포자, 예언자로 살도록 변화시켰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전하며 회개를 외쳤고, 세례를 베풀었다. 물로 온몸을 깨끗이 씻듯이 세례로 마음속의 죄와 묵은 때를 씻어버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하도록 세례를 베풀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회개이다. 회개란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만을 바라보고 향하지 않고 하느님을 바라보고 향하는 것이다. 이 세상 것에만 마음을 두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마음을 두고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하느님의 뜻, 사랑을 거스르지 않고 하느님의 뜻,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회개해야 한다.
셋째, 그러면 무엇을 할까? 주님의 길을 마련하며, 그분의 길을 곧게 내라고 말한다. 주님께서 오시는 길을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것들을 치우고 정리하여 곧바로 오시도록 준비하라는 가르침이다. 주님께서 오시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죄다. “보라, 주님의 손이 짧아 구해 내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분의 귀가 어두워 듣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느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의 죄가 너희에게서 그분의 얼굴을 가리어 그분께서 듣지 않으신 것이다.”(이사 59, 1-2)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는 것은 오직 죄뿐이다.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죄에서 벗어나라.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요한은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1) 골짜기를 메워라. 열등감과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라. ‘나는 안돼. 어쩔 수 없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않아’ 등의 골짜기를 메워라. 그래서 ‘나는 소중해.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귀하게 여기셔. 나를 위해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어.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야.’라고 깨닫게 하라.
2) 산과 언덕을 낮추어라. 교만과 오만의 산과 언덕을 낮추어라. ‘내가 최고야. 내 위에 아무도 없어. 나는 다른 사람을 깔보고 무시하며 짓밟아도 돼. 목이 뻣뻣해서 숙어지지 않아’ 등의 산과 언덕을 무너뜨려야 한다. ‘나도 소중하지만, 너도 소중해. 나도 최고지만, 너도 최고야. 우린 모두 소중하고 고귀해.’라고 깨닫고 실천하도록 해라.
3) 굽은 데를 곧게 하고,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라. 비뚤어진 마음을 곧게 하고, 악한 마음을 다스려라.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지 마라. 해석을 잘해라. 그래서 올바로 보고 올바르게 해석하라. 남을 속이고 해하는 거친 마음을 다스려라. 정의와 공정의 마음을 간직해라.
그리하면 구원의 하느님을 만나리라. 즉,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자기 비하와 열등감에서 벗어나 자존감을 갖고 살며, 교만과 오만에서 벗어나 겸손하게 살며, 마음을 바르게 하여 정의와 공정을 행하라고 하나하나 가르친다.
마지막으로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외친다. 회개란 ‘나를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너도 나 사랑하며 소중하게 여기듯이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며, 나를 존중하고 너도 존중하며, 정의와 공정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며, 이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삶이 회개이고 믿음이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 17)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야고 2, 19)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 2, 26)
요한은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라고 가르친다. ‘조금만, 조금만’ 하고 기다리지 마라. 지금 실천하라. 하느님을 만날 준비하며 살라. 도끼가 이미 닿아 있으니, 미루지 마라.
요한이 하느님 말씀을 들은 그때, 카이로스의 때를 만나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회개를 선포하는 예언자로 변했듯이, 우리도 오늘 이 시간이 카이로스의 때가 되어 우리 자신을 온전히 변화하는 때가 되자. 혹시라도 열등감이나 자기 비하의 마음이 있다면 주님 사랑으로 자존감을 갖고 자신을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자. 교만과 오만의 산을 낮추고 겸손해지자. 비뚤어진 마음을 바르게 하고 거친 마음을 다스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자. 그것이 참된 회개이다. 회개함으로써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