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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마태 2, 1-12)하느님께 바치는 소중한 선물

세심정 2025. 1. 4. 16:37

지난 주일은 성가정 축일이었다. 성가정은 예수님을 모신 가정이므로, 내 자녀, 내 손주들을 예수님으로 모시면 성가정이 된다. 자녀가 없을 때, 배우자를 예수님으로 모시고, 홀로 살면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모심으로써 성가정을 이루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제1 독서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바빌론으로 끌려간 이들이 귀환하여 하느님의 영광과 빛이 가득하리라는 예언으로, 메시아의 강생으로 온 세상에 구원의 빛이 가득할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2 독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한 몸이 되고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다. 복음은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바치고 경배하는 대목이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동방교회의 성탄 축일은 16일이고, 서방교회의 성탄축일인 1225일이었는데, 이를 조율하면서 16일을 주님 공현 대축일로 지내게 되었고, 동방 박사들이 주님을 방문하여 경배하고 예물을 봉헌한 일을 기념한다. 이 축일은 예수님 탄생이 유다인뿐만 아니라 모든 이방 민족에게 구원의 빛을 비춘다는 것을 강조하며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계획을 보여주는 축일이다.

예수님께서 헤로데 대왕 때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는데, 그분의 별을 본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 유다 예루살렘으로 찾아왔다.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인데, 예루살렘 남쪽 8km 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구약에서 에프랏(창세 48, 7; 룻기 1, 2; 1사무 17, 12) 또는 에프라타라고 불렸으며, 다윗왕의 고향(1사무 16, 1-18)으로 메시아가 탄생할 곳으로 예언된 마을(미카 5, 1)이다.

고대 사회에서는 하늘에 특이한 별이 떠오르면 별이 나타난 지역에 중요한 인물이 탄생한다고 믿었다. 동방이란 팔레스티나를 기준으로 동쪽인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등지를 가리킨다. 박사(마고스 : μαγος)란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사제 중의 하나(다니 2, 2.48)이거나 다니엘과 같은 현인(다니 5, 7), 그리고 마법사, 박수, 강신술사, 점성술사, 천문학자를 일컫는 낱말이다. 초대교회에서는 구약(시편 2, 10; 이사 49, 7; 60, 1-6)의 예언과 이들이 바친 예물이 왕궁에서나 사용할 정도로 귀한 예물이며, 모든 민족을 대표하여 왔다고 믿었기에 이들을 왕이라고 생각했다(테르툴리아노). 세 가지 예물을 드렸기에 이들의 수를 셋이라고 했다(오리게네스). 이들의 인종과 연령을 다르게 표현하는 까닭도 예수님 탄생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기쁜 소식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6세기에 이르러 이들의 이름이 멜키올(Melchior), 발타살(Balthasar), 가스펠(Gasper)이라고 했다.

 

페르시아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1,600km, 바빌론에서는 약 900km이다. 바빌론에서 예루살렘까지 낙타를 타고 가도 빨라야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이렇게 먼 거리인데도 그들이 유다의 왕에게 경배하러 간 까닭은 무엇일까? 유다의 왕으로 태어나는 분이 그들과 특별한 관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까?

기원전 587년 유다가 멸망하고 많은 유다 백성이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간 이후, 그들은 각처에 흩어져 살았다. 이들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해방하여 구해줄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는 희망과 믿음, 언젠가 예루살렘에 하느님의 영광이 가득하여 만방이 예루살렘을 우러러보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품고 살았다. 그로부터 600년 가까이 지나간 후에도 그 믿음과 희망은 여전했고, 이러한 희망과 믿음이 동방 박사들에게도 전해졌으리라. 그들은 동방의 별이 메시아의 탄생을 알려주는 별이라고 믿고 그 먼 거리를 찾아왔으리라. 물론 이러한 믿음과 희망은 유대인들의 믿음과 희망이지, 동방 박사들의 믿음과 희망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귀한 예물을 들고 탄생하신 왕께 경배하기 위해 찾아왔다.

오늘 우리가 첫째로 묵상해야 할 점은 임금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찾아온 동방 박사들처럼 우리도 주님을 경배하기 위해 인생길을 걷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멀고 먼 길, 때로는 먹을 양식과 마실 물도 떨어지고, 뜨거운 햇빛과 사막의 거친 바람 속에서 피곤하고 지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지만, 왕께 경배하기 위해 끝까지 참고 견디며 충실히 걸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이들이 걸어온 길이 곧 우리가 걷는 인생길이다. 우리도 인생길을 걸으면서 때로는 굶주리고 병고에 시달린다. 인간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배신당하며, 오해받기도 한다. 악마의 유혹에 흔들릴 때도 많고, 생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다. 그러나 그 모든 고통과 시련, 유혹을 이겨내고 만왕의 왕이신 주님, 생명의 근원이시며 창조주이신 주님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우리가 걷는 인생길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 꼭 필요한 소중한 길이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차곡차곡 떨어져 쌓여 있네. 세상에 버림받고 사랑마저 물리친 몸 병들어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나 홀로 재생의 길 찾으며 외로이 살아가네.”라는 산장의 여인가사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을 향한 재생의 길을 찾으며 꿋꿋이 걸어가야 한다.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 탄생의 별을 임금 탄생의 별이라고 믿었기에 임금이 사는 헤로데의 왕궁을 찾아갔다. 그들은 왕궁에 가서야 그 별이 임금 탄생의 별이 아니라 메시아 탄생의 별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헤로데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박사들이 왕궁에 찾아간 일로 인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우리가 둘째로 묵상해야 할 점이다.

악의 세력이 얼마나 크고 강한가! 인류를 죄에서 해방하여 구원하실 구세주가 강생하시는 것을 방해하기 위하여 악의 세력은 베들레헴 일대의 순진무구한 어린 사내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들은 아무런 죄도 없는데 죽임을 당했다. ‘하느님께서 이들을 죽이셨는가?’ 우리가 자주 착각한다. ‘하느님께서 계시면 왜 그토록 순진무구한 이들이 죽임을 당하는가? 왜 착하고 열심한 이들이 중병에 걸리고 죽어야 하는가? 왜 제주 항공 승객들이 두 명을 제외하고 179명이 죽었는가? 하느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라고 묻곤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을 죽이시는 분이 아니시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고통을 주고 죽여버리는가? 예술가가 자기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걸작, 소중하게 생각하는 걸작을 찢어버리거나 뭉개 버리는가? 하느님은 살라고 창조하셨다. 창조하신 삼라만상을 보시고 좋다. 참 좋다.’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위하여 낙원까지 만드시어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도록 해주셨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벌하시고 죽이신다고 착각한다. 어쩌면 그렇게 착각하도록 하는 것도 악의 세력이다. 악의 세력은 그만큼 교묘하게 사람을 속인다.

사람을 병들게 하고, 고통을 주고, 죽이는 모든 것은 악의 세력이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악까지도 허락하신다. 하느님께서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지금까지 많은 신앙인이 던져왔던 질문이지만, 그 답은 하느님만이 아신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악을 통해서도 선으로 이끌어주신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구약의 요셉 이야기이다. 요셉은 형들에게 죽임을 당하려다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갔고, 포티파르의 종이 되고, 감옥에 갇혔지만, 주님께서는 늘 그와 함께 계셨다. 마침내 그는 이집트의 재상이 되었고, 7년이란 긴 기간 동안 기근이 들어 사람들이 죽어 가게 되었을 때, 이집트 사람은 물론 자기 동족까지 살렸다. 하느님은 악을 통해서도 선으로 이끌어주셨다.

 

셋째, 예루살렘으로 왔던 동방 박사들이 메시아를 찾아 베들레헴으로 떠나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분의 별만 보고 무작정 예루살렘으로 갔었지만, 탄생지가 베들레헴이라는 말을 듣고 그곳으로 출발하자 그 별이 나타나 그들을 인도했다. 아니, 그 별이 처음부터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왜 이제야 별이 나타나는가! 그러면 무죄한 어린이들이 그렇게 죽을 일이 없지 않았겠는가! 하느님은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는가? 이 또한 신비이다. 천국에 가서 하느님께 여쭈어볼 일이다. 다만 주님께 가기 위해서는 별의 인도를 받아야 함을 마음에 새기자.

우리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별이란 무엇인가? 하느님 말씀이다.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하자. 성체와 성혈이다. 미사에 자주 참례하자. 교회의 가르침이다. 교리 공부를 잘하자. 기도, 성체조배, 성인들의 행적 등이다. 기도 시간을 마련하고 성인전을 자주 읽자.

 

넷째,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드린 다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황금은 왕권, 유향은 신성(神性), 몰약은 수난과 죽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예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온 누리의 왕으로서, 수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 죄를 대신 기워 갚으시는 하느님이심을 상징하는 예물이다.

우리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을 만나면, 주님께 선물을 드려야 한다. 어떤 선물을 드릴까? 구약의 하느님 백성은 자선만이 유일한 선물이라고 믿었다. 자선, 정말 중요한 선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선물은 나 자신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나는 하느님께 바치는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므로 아름답게 살자.

 

주님 공현 대축일에 우리 자신이 주님을 향해 길을 걷는 동방 박사임을 생각하자. 힘들고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주님을 향해 꿋꿋이 걸어가자. 세상에는 엄청난 악의 세력이 있어서, 이들로 인해 많은 이가 희생되고,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게끔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악을 통해서도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이심을 믿고, 악의 세력에 굴복하지 말자.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별인 성경, 교회의 가르침, 기도, 성인들의 행적을 잘 읽고 묵상하여 하느님께 나아가자. 그리하여 하느님을 만났을 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나 자신을 소중한 선물로 하느님께 바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