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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봉헌 축일(루카 2, 22-40) 첫째를 먼저

세심정 2025. 2. 1. 21:14

지난 주일에 복음은 테오필로스(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보내는 하느님의 말씀, 편지이므로 복음,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 마음을 읽자는 말씀을 드렸다. 또한 예수님은 메시아로서 우리를 죄와 악으로부터 해방하여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하느님 사랑의 말씀을 전하시며, 희년을 선포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본 모습으로 되돌리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다. 교회는 성탄 후 사십 일째 되는 22일에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이 축일을 지낸다. 386년 예루살렘에서 지내기 시작하여, 450년부터 초 봉헌 행렬을 했다. 시메온은 아기 예수님이 구세주임을 알아보고 다른 민족들에게 계시의 빛이며 이스라엘에는 영광이라고 예언했다. 이날 미사 중에 초를 축복하며, 축복받은 초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며, 성당과 가정에서 기도하거나 특별한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이 축일은 예수님께서 구원자로서 세상에 오셨음을 기념하고, 우리도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아가자는 믿음을 새롭게 하는 축일이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성모님은 출산에 따른 부정을 씻기 위한 정결례를 위하여 요셉 성인과 함께 성전에 가셨다. 율법(레위기 12)에 따르면 사내아이를 낳은 산모는 40일 동안 부정하므로, 40일이 지난 후 양 한 마리를 번제로(출산에 대한 감사와 봉헌의 의미), 비둘기 한 마리를 속죄제로 봉헌해야 했는데(출산으로 인한 부정을 씻기 위해), 가난한 사람은 번제도 양 대신 비둘기 한 마리를 봉헌할 수 있었다. 요셉 성인과 성모님이 정결례를 위해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친 것을 보면 가난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맏아들을 봉헌하기 위해서는 굳이 성전에 갈 필요가 없었고, 어떤 지역에서든지 사제에게 은 5세켈(15~20데나리온)을 주고 속량 의식을 행하면 충분했다(민수 18, 15-16). 그런데 두 분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어 예수님을 봉헌하셨다. 이를 보면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얼마나 깊은 신심을 지녔는가를 알 수 있다.

 

예수님을 성전에서 봉헌한 행위는 먼저 하느님께 감사와 믿음을 고백하며 축복을 비는 행위이다(잠언 3, 9-19). 하느님은 삼라만상의 창조주이시므로, 창조된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다(시편 24, 1).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쳐야 마땅하지만, 첫 번째 것(맏아들, 첫 과일, 짐승의 첫 새끼)을 바침으로써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고백하여(탈출 13, 2), 모든 것을 바친 것을 대신한다. 다만 사람을 바칠 수 없으니까 5세켈을 바치라고 명령하셨다. 정결한 짐승(, , 염소)은 첫 새끼를 그대로 바치고, 부정한 짐승(나귀 등)은 대신 양을 바치거나 죽여야 한다(탈출 13, 13).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창조된 모든 것은 하느님 것이고, 이를 믿고 감사와 축복을 비는 행위가 첫 번째 것을 바친다는 믿음을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바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만 첫 번째 것을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첫째 것을 바치기 어려우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여 바치라고 말씀하신다. 이 신앙이 참 신앙이고, 축복받는 신앙이다.

25년 전, 제가 익산 어양동 본당 신부로 있을 때, 어떤 본당 신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청국장이나 된장찌개 같은 음식을 파는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교우가 있었다. 얼마 전에 강길웅 신부님을 초청하여 강의하셨는데, 그 강의를 들은 다음 교무금을 월 3만 원씩 내다가, 갑자기 월 30만 원씩 내더란 것이다. 깜짝 놀라 그 교우께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신부님 강의를 듣고 첫 손님이 내는 밥값을 모두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첫 손님이 5,000원이면 5,000원을, 여럿이 와서 이만 원이면 이만 원을 모아 바치기로 정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먹고 살려고 그랬냐고 했더니, 똑같다고 답하더란다. 교무금으로 3만 원을 바치나, 30만 원을 바치나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하더란다.

모든 것의 주님은 하느님이시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마음으로 첫째 것을 바치는 신앙이 올바른 신앙이다. 우리 모두 그런 신앙으로 살아야 한다. 첫째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은 하느님 은혜에 감사드리며, 하느님을 섬기는 신앙의 표현이다.

 

달력을 보면, , , 화 순으로 되어있다. 구약의 하느님 백성은 일, , 화로 읽지 않고, 첫째 날, 둘째 날로 읽는다. 첫째 날은 하느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신 날이며,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부활은 죽음을 물리치고 새 생명으로 건너감이며, 그래서 새로운 창조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주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첫날을 주님께 봉헌한다. 주일 봉헌은 대단히 중요한 신앙이다. 얼마나 중요하면 교회가 주일 미사 참석을 의무라고 정하고, 미사 참석하지 않으면 죄라고 가르친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가 그렇게 야박하지는 않다. 주일 미사 참례가 중요한 의무이지만, 교회법(1,247-1,248)에서는 특별한 경우, 중병이나, 병원에 입원 중인 경우, 전염병이나 고령으로 외출이 어려운 경우, 의료진(의사, 간호사 등)으로서 환자를 돌보거나, 경찰, 소방관, 군인 등으로서 근무 중인 경우,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 직업군 종사자, 미사 참례가 어려울 정도로 멀리 있거나 기상 악화로 인해 이동할 수 없는 경우, 가족이 위급한 상황에 있어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경우 등, 특별한 경우에는 미사 참례 의무를 면제해 준다. 대신 그에 상응하는 기도(주일 성경 말씀 묵상, 매일 미사 읽기, 묵주기도, 성무일도)나 희생으로 대신하도록 한다. 그러므로 일주일의 첫날을 먼저 하느님께 봉헌하는 신앙인이 되자.

 

둘째, 먼저 바쳐야 한다. 첫째 것을 바치되, 먼저 바쳐야 한다. 내가 할 것 다 하고, 쓸 것 다 쓰고, 나머지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바쳐야 한다. 하느님이 주님이시므로, 주님께 먼저 바쳐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많은 것을 바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먼저 바치기를 원하신다. 먼저 바치는 것에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섬기고, 공경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바치는 것에 담겨 있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시켰는데, 배우자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이때 배우자를 위해 먼저 주문하거나, 먹을 음식을 따로 소분하여 놓았다가 배우자에게 가져다주면, 배우자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겠는가! 그런데 다 먹고 남은 음식을 가져다주면 배우자의 기분이 어떻겠는가! ‘먼저 바치는가? 남은 것을 바치는가?’에 따라 신앙도 달라지고, 축복과 은총도 달라진다.

그러므로 먼저 바쳐야 한다. 시간도 먼저, 생활도 먼저, 모든 것을 먼저 바쳐야 한다. 그러면 주님 은총과 축복이 넘쳐나리라.

 

셋째,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예수님을 봉헌하기 위해 성전을 찾았더니, 시메온이라는 예언자를 만났다. 그는 평생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렸는데, 이는 곧 구세주 메시아를 기다렸다는 의미이다. 구세주 메시아가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그는 인내와 끈기로 메시아를 기다렸고, 마침내 만났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 그는 연로한 예언자다. 그는 평생 메시아를 기다렸고, 임종에 가까워 메시아를 만났다.

시메온은 주님을 만나고,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우리에게 모범을 보여 준다. 우리도 일생 주님을 만나기 위해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도 시메온처럼 메시아를 만날 준비하며 인내와 끈기로 기다려야 한다. 인생은 때가 이를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고치에서 힘들게 나오는 나비를 보았단다. 한쪽 날개는 겨우 나왔는데, 다른 날개는 잘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나오지 않은 날개를 뽑아 내주었다. 그는 나비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나비는 뽑아내 준 날개가 잘 펴지지 않아 제대로 날지 못했다고 한다.

인생은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보내면서 1) 첫째 것을 바치자. 2) 먼저 바치자. 3) 주님께서 주실 때를 기다리자.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신앙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