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2 주일(요한 20, 19-31)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지난 주일은 부활 대축일이었다. 1) 주님께서는 주간 첫날인 주일에 부활하심으로써 새롭게 창조하셨기에, 주일을 거룩히 지내자. 2)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사랑으로 살고, 3) 신앙과 진리에 관한 문제는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며, 4)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말씀이 주는 감동으로 살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제1 독서는 성령 충만한 사도 베드로가 기적과 표징을 많이 일으킨 내용이며, 제2 독서는 성령께서 사도 요한에게 묵시록을 쓰도록 이끌어 주신 말씀이고,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말씀이다.
주간 첫날 저녁,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예수님을 잃은 상실감, 사랑하는 주님을 잃은 슬픔과 절망,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했던 유다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들은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주간 첫날 저녁 함께 모였다. 그들이 모여서 무엇을 했을까?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드렸으리라. 또한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그들에게 명령하신 성찬례를 거행했으리라. 함께 모여 기도하는 자리, 그 자리에 주님께서 오신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 19-20)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대로 제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 나타나셨다.
오늘 우리도 함께 모여 기도하며,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명하셨던 그 성찬례, 미사를 봉헌한다. 주님께서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이 자리에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말씀을 믿고 함께 모여 청해야 한다.
둘째,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힌 제자들에게 오신 주님께서는 가장 먼저 평화를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 27)라고 평화를 주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을 잃은 다음, 평화도 잃어버렸고, 두려움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두려움과 절망감을 없애는 평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른 평화, 오직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평화를 주심으로써 제자들이 닥쳐올 박해와 환란을 이겨내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함께 모여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에게도 평화를 주신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 불안과 근심, 걱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평화를 주신다. 주님께서 이 평화를 주심을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숨을 불어넣으시다.’라는 표현은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 7)라고 하실 때 사용한 표현이다.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창조하셨듯이,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어 성령을 통하여 제자들을 사도들로 재창조하셨다. 그래서 제자들은 사도로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도 세례를 통하여 물과 성령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그리스도를 옷 입은 사람,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새롭게 태어났다. 우리 자신이 또 하나의 그리스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처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고, 그리스도처럼 세상의 죄를 대신 기워 갚고, 죄의 용서를 선포하며, 그리스도처럼 평화를 전달하며 살아야 한다.
넷째, 여드레 뒤, 그러니까 다음 주간 첫날 저녁, 토마스도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시어 평화를 주셨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토마스에게 당신 부활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셨다. 그러자 토마스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확실한 신앙을 고백한다. 주님 체험이 그를 확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나게 했다.
하느님께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고 더 깊은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토마스와 같은 주님 체험이 꼭 필요하다. 토마스가 예수님 손과 옆구리에 손을 댔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주님 말씀을 듣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확실한 신앙을 고백했다.
다섯째, 예수님께서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은 토마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하신 말씀이다. 즉 예수님을 볼 수 없는 후대의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사도 베드로는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1베드 1, 8)라고 말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다. 그러나 믿음으로 주님을 본다. 믿음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마지막으로 복음서를 쓴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자.
부활 제2 주일을 보내면서 1) 함께 모여 기도하는 이 자리에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 2)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깊은 평화를 주시어 세상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하신다. 3)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우리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서 살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를 전해야 한다. 4) 토마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도 주님 체험을 통해 더욱 깊은 신앙을 가지며, 5) 믿음을 통해서 주님을 뵙고,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