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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0주일 가해 3(마태 15, 21-28) 간절하고 겸손한 기도

세심정 2023. 8. 19. 10:22

지난 주일 복음은 풍랑에 시달리는 제자들을 구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가신 기적의 이야기다. 제자들을 얼마나 염려하고 걱정하셨으면 그처럼 물 위를 걸어가실까? 유령이라고 소리지르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신다. 힘들고 괴로울 때, 죽을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이 말씀을 꼭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극심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주님이 되어 그 말씀을 들려주어야 한다. 주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굳게 믿어야 한다.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복음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를 피하여 제자들과 함께 이방 지역인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그런데 어떤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가나안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다. 구약의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떠돌아 다닐 때,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정착하지 못하도록 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 여인이 예수님께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친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존경하는 왕이다. 다윗 시대에 다른 민족들을 물리치며 나라의 번영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늘 다윗 시대를 그리워했고, 하느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을 다시 번영케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다윗의 자손이란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이며,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란 표현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능력의 주님께 겸손하게 청하는 표현이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여인이 예수님을 메시아, 구제주라고 고백하며, 치유해주시기를 청했다. 그녀는 비록 이방인이었고, 하느님을 잘 알지 못했지만, 자신을 구원하실 분이 누구이신가를 알아보았다. 이방인인 그녀가 어떻게 주님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녀의 간절함 때문이었으리라. 그녀는 호되게 마귀 들려 고통당하는 딸을 위해 많은 의사, 예언자, 사제 등을 찾았지만, 딸을 치료할 수 없었다. 그래도 딸을 포기하지 않고 딸을 고칠 분을 계속하여 찾다가 주님에 관한 소식을 들었으리라. 그녀는 그렇게 주님을 만나자 큰 소리를 지르며 딸을 치유해주시기를 간청했다.

내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일이 성취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간절히 청하라. 포기하지 말고, 청하라. 온전한 믿음으로 청하라. 오늘 복음의 여인처럼 간절히, 포기하지 말고, 온전한 믿음으로, 자신을 낮추며 그렇게 청해야 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큰 소리를 질러댔는데도 한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고 묻는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에게 침묵을 지키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침묵을 지키신다. 어쩌면 이 여인이 더 깊은 믿음을 갖고 인내하도록 하시기 위함일까?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시작했기에 이방인 여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일까? 여하튼 예수님께서는 침묵을 지키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 여인을 돌려보내라고 아우성친다. 제자들은 그녀의 구원에 관심이 없다. 그녀가 떠드는 소리가 듣기 싫고, 혹시라도 그 소란으로 인해 어떤 불이익이 올까를 염려했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말을 들으신 후, 여인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 공동체의 소중함을 생각해야 한다. 교회가 자기 이익만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고,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교회 공동체는 주님과 소통하도록 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한다. 세상의 문제점들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해결해주시기를 교회 공동체가 간구한다. 교회 이익만을 위해서 할지라도 세상과 주님을 연결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소중함을 둘째로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말을 들으신 후 비로소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라고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녀의 믿음을 확인하는 말씀이다.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시작하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특히 그들 가운데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을 먼저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녀의 믿음을 확인하신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서 너를 거부하는데도 믿음으로 간절히 청하겠느냐는 질문이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께 감사드렸다. 한 말씀도 하지 않으시기에 무척 섭섭했고, 자신의 청이 이루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건네시니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 깊은 믿음과 용기를 갖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 절하며 도와주시기를 또다시 청하였다. 그녀는 주님께 간절히 청하면서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제자들도 보지 않았다. 오직 주님만 바라봤고, 주님 말씀만 듣고자 했다. 주님만이 그녀의 전부였다.

셋째, 우리도 이 여인처럼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야 한다.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 말씀만 듣고, 주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엎드려야 한다. 우리가 참석하는 주일 미사가 곧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리고 감사드리는 미사이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의 전부이어야 한다.

 

그처럼 당신 앞에 엎드린 여인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너무 애처롭고 가엾이 여기지 않으셨을까? 그녀의 믿음과 간절함이 주님의 가슴을 울리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녀의 청을 거절하시는 말씀이 아니다. 다시 한번 여인의 믿음을 확인하시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만 하느님께서 뽑으신 백성이고, 다른 민족은 개나 돼지, 축생과 같이 여겼다. 그들은 실제로 이방인들을 개, 돼지라고 불렀으며, 자기들의 깨끗함을 유지하기 위해 이방인들과 함께 자리하거나 식사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말씀은 여인의 가슴에 못을 박는 아픈 말씀이다.

내가 주님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엄청나게 자존심 상하지 않았을까? 그 자리를 박차고 떠나지 않았을까? 주님께 욕하며 대들지 않았을까? 그런데 여인은 오히려 그 말씀에 감사했다. 그녀는 비록 자녀가 아니라서 식탁에 함께 앉을 수는 없지만, 강아지도 식탁 주변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는 주워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동 지방에서 먹는 빵 가운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걸레빵이라고 부르는 빵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칼국수를 만들기 위해 만든 동그란 밀가루 반죽을 쇠판 위에 구워 먹는 빵인데 나름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사람들은 평상 같은 곳에서 그 빵을 찢어 먹곤 하는데, 개들이 몰려와 애처로운 눈빛을 하면, 그 빵으로 평상 바닥을 한 번 닦아서 개들에게 던져주곤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빵을 걸레빵이라고 불렀다.

여인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라고 즉각 답했다. 자기가 비록 하느님 백성이 아니더라도, 개나 돼지와 같은 축생일지라도 주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고, 받는다면 더없이 감사한다는 감사의 신앙고백이다. 동시에 자신을 철저히 낮춘 겸손의 신앙고백이다. 주님께서 철저히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다. 여인은 주님을 본받아 자신을 철저히 낮추어 감사드렸다.

그러므로 넷째,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내 처지가 어떠하든 감사해야 한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 16-18)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며, 우리의 청을 들어주신다. “무슨 일이든 이기심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필리 2, 3)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신다.”(야고 4, 6)

 

여인이 감사와 겸손으로 신앙고백을 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녀의 청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시간에 여인의 딸이 나았다. 그렇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딸을 살렸다. 어머니의 감사와 겸손의 신앙고백이 딸을 살렸다.

오늘 우리가 마지막으로 생각해야 할 점은, 나의 간절한 기도, 감사와 겸손의 신앙고백이 내 가족을 살린다는 점이다. 내 간절한 기도가 배우자를 살리고, 내 자녀를 살리고, 내 부모를 살린다. 그러므로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복음의 가나안 여인, 하느님도 주님도 알지 못하는 이방 여인이 딸을 치유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인해 주님을 알고 믿게 되었다. 이기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제자들이란 교회가 그녀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계신 주님께 알렸고, 그래서 그녀는 주님 말씀을 듣고 주님 앞에 나아와 엎드릴 수 있었으며, 감사와 겸손의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딸이 치유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주님 앞에 나아와 감사와 겸손의 신앙고백으로 내 가족, 내 친지, 내 이웃을 살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