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1주일 가해(마태 16, 13-20) 천국 열쇠를 받은 우리
지난 주일 복음은 가나안 여인의 간절한 기도로 그의 딸이 치유되는 대목이었다. 여인은 하느님을 전혀 몰랐지만, 딸에 대한 사랑과 간절함으로 주님을 알았고, 감사와 겸손한 믿음으로 딸이 치유되도록 했다. 한 사람의 기도가 그의 자녀, 부모, 형제, 가족을 살리며, 이웃과 다른 이들까지도 구원함을 믿고, 이웃을 살리는 기도의 신앙인이 되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의 영주인 헤로데 안티파스를 피해 북쪽 헬몬산 기슭에 있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을 지나가시면서 일어난 일이다. 카이사리아란 ‘로마 황제 카이사르의 도시’란 뜻으로 그곳 영주인 헤로데 필립이 로마 황제 카이사르에게 봉헌하기 위해 건축한 도시이다. 그래서 이 도시에는 황제를 섬기는 신전, 제우스 신전과 그 외에도 많은 신을 섬기는 만신 전이 있었다. 이처럼 우상이 가득한 도시를 지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 즐겨 사용하시던 표현으로, 구약(다니 7, 13-14)에서 예언된 구세주 – 메시아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이 세상을 구원하실 구세주이심을 자각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나는 세상의 구원자인데, 사람들이 메시아인 나를 알아보고, 믿고 있느냐?’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한다고 답한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심판을 전하며 회개를 선포한 예언자로서 엘리야의 영과 능력이 있는 위대한 예언자이다(루카 1, 17). 예수님께서는 그를 가리켜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가장 큰 인물이라고 표현하셨다(마태 11, 11). 엘리야는 구약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며 백성의 타락과 종교적 불의를 꾸짖은 예언자로서 바알의 예언자와 대적하여 승리하고 그들을 모조리 처형한 예언자이다(1열왕 18, 40). 그는 메시아가 오시기 전 메시아의 길을 준비한다고 예언되었으며(말라 4, 5-6), 승천했다고 전해지는 예언자이다(2열왕 1, 11).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말씀하셨다(마태 11, 11).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가장 많이 울었던 예언자이다(예레 14, 17; 31, 16; 애가 1, 2). 예레미야 역시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그분의 선구자로 와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불러 모으시고 받아주실 때까지 하느님의 영광을 재현할 예언자로 믿고 있었다(2마카 2, 1-12; 15, 14). 예언자 중의 하나란 구약의 모세(신명 18, 15), 이사야, 에즈라처럼 다시 살아나 종말을 준비할 예언자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를 준비하는 예언자라고 알고 믿었지만, 메시아라고 믿지는 않는다는 답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강림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다른 민족으로부터 해방해주고, 모든 민족 위에 우뚝 서게 해주실 것을 간절히 희망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 정치적으로 자신들을 해방해줄 메시아, 자신들에게 현실적 이익과 유익을 줄 메시아를 간절히 원했다. 그렇다. 누구나 자기 이익을 구한다. 우상이란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존재일 따름이다. 그래서 사람은 우상숭배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볼 때, 예수님께서는 자기들에게 그런 이익을 줄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자기들을 로마로부터 해방해줄 그런 정치적 메시아와는 거리가 멀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다만 구약에 예언된 예언자라고 바라보았을 따름이다.
이 답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신다. 주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주님에 대해 정확히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않음을 잘 알고 계셨다. 사람은 그렇다. 자기 이익, 특히 현세적 이익에 관심을 기울일 뿐이다. 하느님, 구원, 영원한 생명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까닭도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함이 아니라, 로마로부터 해방과 유대 독립이라는 현실적 이익을 구하기 위해 기다릴 따름이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이기적인 존재가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람의 속성을 잘 알고 계셨고, 그 때문에 마음 아파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다. 과연 제자들은 주님을 제대로 알고 믿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제자들도 일반 사람들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가를 물으신다. 그러자 곧바로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한다. 베드로의 고백은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의이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신성(하느님의 아들)과 인성(그리스도),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동시에 예수님의 신분과 강생 목적이 담겨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기름 부어주신 분으로서 하느님의 일을 하시는 분, 메시아이시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사람은 사제, 왕, 예언자였고, 예수님께서는 곧 대사제이시며 왕이시고 예언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참으로 대단한 신앙 고백을 한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곧장 대답할 수 있었을까? 신앙은 계시다.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알려주심이다. 이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곧 신앙이다. 베드로가 주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깨달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에게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계시를 ‘예’라고 응답하고 받아들여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시에 응답하는 것이 곧 신앙이며, 이 신앙을 바탕으로 교회가 세워진다. 그러므로 신앙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신앙 없는 교회는 일반 계 모임이나 동호회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그러한 신앙을 갖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베드로에게 “너는 행복하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알려 주셨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신앙인은 참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내가 무엇을 많이 가지고, 많이 알고, 건강하고 등등, 그래서 행복한 것이 아니다. 참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서 행복하고, 그래서 축복을 받았다. 가진 것이 없고, 능력이 부족하고, 건강하지 않더라도, 하느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참으로 행복한 사람, 축복받은 사람이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그의 신앙 고백을 바탕으로 그를 베드로, 반석 - 교회를 세울 튼튼한 반석으로 세우셨다. 그가 전에는 요나의 아들 시몬(‘하느님께서 들으셨다. 응답하셨다.’라는 뜻)이었지만, 신앙 고백을 통하여 베드로(반석)가 되었다. 그는 우상이 가득한 도시 카이사리아 필리피에서 신앙 고백을 통하여 새로운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참된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베드로처럼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 신앙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인 새로운 나로 태어나야 한다. 위로부터 태어나고, 거듭 태어나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참 하느님을 알고 믿는 참된 신앙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라고 명백히 선언하신다. 삼라만상의 주님이신 하느님을 이길 자는 없다. 저승의 세력은 곧 죽음이다. 많은 이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이 주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이길 수 없다. 죽음이 끝처럼 보이지만, 죽음을 넘어서 부활을 통하여 지상 교회는 천국 교회로 이어져 영원을 살아간다. 사실 주님께서 죽음을 넘어서시고 물리치셨다(로마 6, 9).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살아 있는 자다. 나는 죽었었지만,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나는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쥐고 있다.”(묵시 1, 17-18)라고 선언하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모든 교우들이 부활할 것을 보증해주신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우리 모두 죽지 않고 다 변화할 것입니다. 순식간에, 눈 깜박할 사이에, 마지막 나팔 소리에 그리될 것입니다. 나팔이 울리면 죽은 이들이 썩지 않는 몸으로 되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 15, 51-52)라고 복음을 전했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에페 5, 23) 하느님 백성이다. 하느님을 믿는 우리가 곧 교회이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직접 뽑으셨고, 그들을 사도로 임명하셨으며, 그들을 통해서 우리까지 뽑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주님께서 뽑으신, 주님으로부터 뽑힌 소중한 이들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주님의 지체인 우리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신다. “우리도 수가 많지만,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 이루면서 서로서로 지체가 됩니다.”(로마 12, 5)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온 세상을 구원하는 주님의 지체요 도구임을 믿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 교회인 우리를 통해 사탄과 죽음의 세력을 물리치신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시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열두 사도와 전체 교회를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다. 이는 동시에 모든 사도, 나아가 전체 교회에 주신 것이다. 교회는 구원의 문인 동시에 구원의 열쇠이다. 그러므로 구원은 교회를 통해 오고, 교회밖에 구원이 없다고 선언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인 교회는 그토록 소중하고 고귀하다.
많이 가져서 행복하고 축복받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고 믿는 것이 행복이며 축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하고 축복받은 소중한 분들이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시몬 바르요나가 믿음의 반석인 베드로로 새로, 위로부터, 거듭 태어난 것처럼 우리도 주님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 새로, 위로부터, 거듭 태어난 소중한 주님 자녀들이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뽑힌 소중한 자녀들이며, 천국 열쇠를 가지고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주는 보배로운 존재이다. 그러므로 보배로운 주님 자녀로서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