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마태 2, 1-12) 삶을 예물로 봉헌하자
1월 6일은 원래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바쿠스) 신의 축제일이었는데, 사람들이 술에 취해 난잡하고 방탕한 행위를 많이 했다. 동방교회에서는 이들로부터 신도를 보호하기 위해 주님 탄생 대축일로 정해 성대하게 축제를 지냈다. 12월 25일은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 축제일인데, 서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빛이며 태양이시므로 이날을 성탄일로 정해 축제를 지냈다. 후에 성탄일을 조정하면서 12월 25일은 성탄일, 1월 6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로 정해 지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가까운 주일에 이 축일을 지낸다.
오늘 제1 독서는 예루살렘에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는데 이는 일차적으로 바빌론에 끌려갔던 포로들이 귀환하는 것을 가리킨다. 동시에 메시아께서 강생하시어 온 세상에 구원의 복음이 전해질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다. 강생하신 메시아께서는 빛으로 오시어 어둠을 밝히시리라.
제2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다른 민족들도 예수님 안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늘나라의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구원된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
복음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황금, 유향, 몰약이라는 귀한 예물을 드리며 경배하는 대목이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에서 성왕이라고 칭송받는 왕이며, 이스라엘은 다윗 시대에 주변 나라들을 제압했고, 평화를 누렸다. 그래서 그들은 늘 다윗 시대를 그리워하였다. 바로 그 성왕 다윗이 태어난 고향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강생할 것을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라고 미카 예언서(미카 5, 1)는 예언하였다. 즉 탄생하는 메시아는 다윗처럼 이스라엘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분으로 예언한 것이다. 바로 그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메시아, 구세주로 강생하셨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연약한 인간의 몸을 취하여 강생하셨다. 당신 자신을 철저히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다.
오늘 우리가 먼저 묵상해야 할 점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실 정도로 자신을 철저히 낮추심으로써 사람을 구원하셨다는 점이다. 자신을 높이지 말고 낮추어야 한다.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성숙하게 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구원하기 위해 낮추어야 한다. 자기가 높아져서는 아무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이와 같다. 갓난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부모가 아이를 지극정성 보살펴야 한다.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맞추어 주며 아이를 섬겨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를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하느님께서 철저히 자신을 낮추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낮추셨듯이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이는 오직 인간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큰 사랑이다. 사랑이시기에 사람이 되셨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셨다.
구세주의 강생을 기다린 이스라엘 백성은 많다. 특히 율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제들, 경건하게 살면서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리던 신심 깊은 이들, 그런데 구세주 강생의 기쁜 소식이 그들에게 먼저 전해지지 않았다. 아니 그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전해졌겠지만, 그들은 그 소식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멀리 동방에 있던 박사들이 구세주 강생의 기쁜 소식을 먼저 알아들었다.
동방이란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땅으로, 페르시아나 바빌론, 메데, 아라비아 등지를 가리킨다. 특히 바빌론에는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메시아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잘 알고 있었다. ‘박사’란 박수나 점쟁이 등이 아니라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사제(다니 2, 2.48)나 천문학자(점성가)를 가리킨다. 초대 교회에서는 왕들이 와서 메시아를 경배하리라는 구약의 예언(시편 72, 10; 이사 49, 1; 60, 1-9)에 따라 박사를 왕이라고 했으며, 6세기 말에는 그들의 이름이 멜키올, 발타살, 가스펠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들이 어떻게 구세주 강생의 기쁜 소식을 먼저 알아들었을까? 작년 공현 대축일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동방 박사들이 구세주께 황금, 유향, 몰약을 예물로 바치기 전에, ‘부르심, 식별, 놀라움’의 은혜를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이들을 부르셨고, 부르심을 받은 그들은 부르심이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식별하는 은총과 함께 구세주를 만나 뵙는 놀라움의 은혜를 받았다는 말씀이다. 어떤 이들은 부르심을 받지 못했거나, 받았어도 부르심을 식별하지 못했거나, 식별했어도 구세주께 가서 구세주를 만나는 놀라움의 은총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부르심을 알고 식별했어도 실천하는 용기가 없으면 구세주를 만날 수 없다.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점을 묵상해야 한다. 하느님은 만유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부르신다. 하느님께서 부르셨어도 부르심을 알아들어야만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식별해야만 한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식별했어도 구세주를 향해 가야만 한다. 실천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구세주를 만나는 기쁨, 놀라움을 체험한다. 실천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 17)
우리도 구세주를 만나는 기쁨과 놀라움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듣는 식별이 필요하고, 식별한 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동방에서 별을 보고 구세주께 경배하기 위해 유다에 온 박사들은 예루살렘으로 갔다. 이 별은 어떤 별이며, 구세주 성탄일은 언제일까? 현대 과학자들은 이 별이 목성과 토성으로 물고기자리에서 기원전 7년 5월 29일, 9월 30일, 12월 5일, 세 번에 걸쳐 근접하여 큰 별로 빛났음을 밝혀냈다. 교회 학자들은 헤로데 대왕의 사망 시기를 바탕으로 주님 탄생 연도를 기원전 6~7년경이라고 추정했다. 목자들이 들에서 양들을 돌보는 시기는 4~11월이므로, 주님께서 5월경에 탄생하셨으리라 추정했고,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5월 20일을 성탄일로 제안했다. 주님 성탄일을 12월 25일로 정한 까닭은 이날이 정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공경하기에 합당하고 태양신 미트라의 축제로부터 그리스도인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셋째, 동방 박사들은 별의 인도를 받고 구세주를 찾아갔다. 구세주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그분께로 인도하는 별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유대에 도착했는데, 임금은 궁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헤로데의 궁전으로 찾아가 구세주를 찾았다. 그러나 구세주를 만날 수 없었다. 그들이 헤로데 궁전에 찾아갔기에, 그로 인해 베들레헴과 그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이 모조리 죽임을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마태 2, 16). 그들이 궁전을 떠나자 다시 그 별이 그들을 인도하여 구세주를 만나 뵙게 했다. 자기들의 잘못된 판단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밝혀 주신 별의 인도에 따르자, 그들은 구세주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잘못된 판단에 따라 별의 인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이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 정상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 전도관, 통일교를 시작으로 J.M.S. 신천지, 만민 교회, 구원파 등 그 수효도 많다. 증산교, 대순진리회 등의 사이비 종교에서 많은 이가 속아 살고 있다. 어떤 분은 ‘자녀들이 사이비 종교에만 빠지지 않은 것도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사이비 종교의 폐해가 심각하다. 잘못된 가르침에 따라 인생을 버리고 후회하는 이들이 많다.
참된 별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정통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 가톨릭교회가 수많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모든 시련과 박해를 이겨내고 2,00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까닭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지 말고, 교회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
마지막으로 박사들은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바쳤다. 황금은 가장 값비싼 보물로서 그리스도의 고귀함과 하늘과 땅의 왕이신 주님의 왕권을 상징하며, 유향은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는 향료로서 하느님께 바치는 가장 경건한 봉헌물로서 주님께서 대사제로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고 구세주를 찬미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몰약은 장례식에 쓰는 약물로서 그리스도 수난의 신비를 뜻하며 구세주의 사명을 상징하는 예물이다.
동방의 먼 곳에서 귀한 예물을 가지고 오기까지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는가! 도둑이나 강도로부터의 위험, 폭염이나 폭우, 모래폭풍 등의 자연재해로 인한 위험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오직 구세주께 예물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그 먼 길을 걸어왔다.
이들이 걸어온 길이 곧 인생이 아닌가!
인생이란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주님을 만나 어떤 선물을 바칠까?
생을 마감할 때, 우리는 주님을 뵙고 주님께서 주신 삶을 이렇게 살았다고 내 삶을 봉헌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내 삶이 곧 주님께 바치는 예물이다. 우리는 주님께 바칠 소중한 예물을 준비해야 한다. 내 삶을 소중히 살아 주님께 예물로 봉헌해야 한다.
구세주께서는 지극히 낮추시어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동방 박사들에게 부르심, 식별, 놀라움의 은혜를 주시어, 이방인까지도, 모든 사람을 구원하셨다. 우리도 동방 박사처럼 부르심을 알아듣고 식별하여 구세주께 경배드리러 가는 실천적 믿음이 중요하다. 우리가 주님께로 인도하는 별, 교회의 정통 가르침에 충실하여 구세주께 경배드리자. 우리 삶을 마치고 주님을 뵙고 경배드리는 그날, 주님께 소중한 예물을 드리자. 그 예물은 바로 나 자신이며, 나의 삶임을 깨닫고 삶을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