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나해(요한 3, 14-21)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느님
지난 주일 복음은 주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말씀이었다. 성전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은총과 축복을 전함으로써 하느님을 보여주는 하느님의 집이다. 또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이 곧 성전이며, 우리 자신이 이웃에게 하느님을 보여주는 성전이라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제1 독서는 유대 백성이 하느님께 죄를 지어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끌려갔으나, 하느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기억하시어 그들이 돌아오도록 해주셨다는 말씀이다. 제2 독서는 사람이 죄와 허물이 크지만, 하느님께서 크신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은총으로 구원받도록 하셨다는 말씀이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께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셨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 생활을 할 때, 하느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이집트 생활을 그리워하자, 불 뱀이 나타나 이스라엘 백성을 물어 죽였다. 백성은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며 뱀들을 치워주시기를 청했지만, 하느님께서는 뱀을 치우지 않으시고 구리 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두고, 누구든지 뱀이 물어 죽어가더라도 구리 뱀을 바라보면 다시 살아나도록 하셨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하느님께서 뱀만 치우시면 뱀에 이미 물려 죽어가는 사람은 살아날 수 없다. 그러나 구리 뱀을 바라보도록 하셨기에 이미 물려 죽던 사람도 살아나도록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만큼 당신 백성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느님 말씀을 믿고 구리 뱀을 바라보느냐? 하느님 말씀을 믿지 않고 바라보지 않느냐?’ 하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뱀에게 물린 것과 구리 뱀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구리 뱀이 치유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이다. 말씀을 믿는 것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믿고 따르면 살고, 믿지 않고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 그러니 말씀을 믿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구약은 신약의 예표다. 신약을 이루기 위한 준비이다. 구리 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는 표징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높이 달리셔야 했다. 그래서 누구든지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은 자기 죄 때문에 죽더라도 다시 살도록 하셨다. 주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기워 갚아주셨음을 믿어야 한다. 그 믿음이 나를 구원한다. 믿음 없으면 하느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믿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한다(로마 4, 11).
불 뱀은 곧 죄이고, 구리 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광야에서 떠돌던 이스라엘 백성이 뱀에게 물려 죽다가도 구리 뱀을 보고 살아났듯이, 우리도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짓고 죽더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께서 내 죄를 기워 갚으셨음을 믿으면 죄에서 벗어나 다시 살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불 뱀에게 물려 죽어가다가도 구리 뱀을 바라보고 다시 살아났듯이 우리도 죄에 빠져 죽더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다시 살아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늘 십자가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삶, 오늘 우리가 첫째로 묵상해야 할 점이다.
이어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영원한 생명은 믿음과 관련이 있다. 믿음 없이는 영원한 생명이 없다. 이어서 복음 중의 복음인 말씀,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어 외아들을 내주셨고, 그래서 주님께서 내 죄를 갚아주셨음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내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실망이나 절망하지 말고, 포기하거나 자기를 학대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를 존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을 굳게굳게 믿고 마음속 깊이 새기고 간직해야 한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태초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 되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지금도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이어서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려면 노아의 홍수 때처럼 온통 물바다가 되게 하시거나, 불바다를 만드시거나, 천재지변 또는 행성이 지구를 강타하도록 하시면 된다. 굳이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죽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인가? 인류 구원을 위하여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기워 갚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이미 구원해 주셨다. 문제는 단 하나, 이를 믿는 것이다. 믿으면 이미 구원받았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믿지 않고, 십자가의 희생으로 내 죄가 용서받았음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이며, 비록 죄와 허물이 클지라도 주님의 사랑을 통해 하느님을 닮아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믿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과 멀어지고 단절되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멸망과 죽음, 어두움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악행도 서슴지 않는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십자가를 거부한다. 육신의 안일함과 즐거움만 찾는다. 영혼을 팔아넘긴다. 이러한 모든 행태가 곧 믿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살아가자. 하느님께서 나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시어 외아들의 목숨까지 바쳐 나를 구원하셨음을 굳게 믿고 살자. 그 믿음으로 비록 죄와 허물이 크고 많더라도, 부족하고 못났어도 자신을 사랑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용기를 내어 걸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