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일 나해(요한 12, 20-33) 희생으로 구원하시는 주님
지난 주일 복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실 정도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시며 사랑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 16)라는 복음 중의 복음을 늘 기억하고 간직해야 한다.
오늘 제1 독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가슴과 마음에 당신 법을 새겨 주시어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시며, 백성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고, 기억하지 않으시며 사랑하신다는 말씀이다. 제2 독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완전하게 되셨고,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복음은 주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한 당신 희생의 때에 대한 말씀이다.
파스카 축제가 가까이 오자, 예수님께서는 평화와 겸손의 상징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파스카 축제란 이스라엘 백성이 죄와 억압의 상징인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자유를 얻고 하느님 백성이 되도록 한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이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이집트 백성의 맏아들과 가축의 맏배는 죽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 양이 백성의 맏이들을 대신하여 죽임을 당함으로써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처럼 모든 사람 -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셨다. 파스카의 어린 양이 되시어 십자가상에서 피 흘리시고 죽임을 당하심으로써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 제사를 봉헌하시기 위해 가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희생양이 되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셨으니, 희생양으로서 죽음을 앞둔 예수님 마음은 얼마나 착잡하셨을까? 여기까지가 오늘 복음의 전 대목이다.
오늘 복음에서 파스카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온 그리스 사람 몇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청한다.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많은 군중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임금님처럼 맞이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하느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은 위대한 현세적 왕이 확실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능력의 왕이라고 믿고 예수님을 만나기를 청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이와 같은 현세적 능력의 왕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영광스럽게 되실 때에 대해 말씀하신다. 당신 영광의 때란 사람들로부터 왕으로 추앙받는 때가 아니다. 사람들은 현세의 왕과 그 능력을 원하지만, 참된 왕은 권세와 능력을 행사하는 왕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모든 이의 죄를 대속하고, 모든 이를 구하는 희생과 보속의 왕이시다. 바로 그때가 당신이 영광스럽게 되시는 때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말씀하셨다. 당신 목숨을 바치는 희생과 보속을 실천하심으로써 많은 이들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도록 하시는 왕이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첫째로 묵상해야 할 점은 현세적 이익을 구하기보다 영원한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탐욕과 이기심에 빠져 자기 이익을 구하기 위해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거스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현세의 이익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 영원한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와 그 의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 31-33)라고 말씀하셨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만,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구하면 이 모든 것들은 곁들여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먹고, 입고, 살기 위해서 하느님 나라와 그 의로움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신앙인의 참된 자세에 대한 가르침이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이란 현세적 자기 이익을 위해 이기심과 탐욕에 빠진 사람,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에게 다른 사람은 없고, 하느님도 없다. 오직 자신뿐이다. 자기가 우상이다. 자신만 위해 살아간다. 그렇게 자신을 우상으로 섬기며 자신만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없다고 주님께서 가르치신다. 신앙인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 자기를 우상으로 섬기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자기를 버리는 사람이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 24-26)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이기심과 탐욕,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 자기라는 우상을 버려야 한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목적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영원한 생명은 주님께서 주신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나를 버려야 한다. 주님께 의탁해야 한다.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다.
그러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는 것, 자기 목숨을 미워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다. 자기를 버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라고 기도하셨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마음이 너무나 산란하여 이때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청하고 싶어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주소서.”(마르 14, 36)라고 기도하셨다. 그렇지만 이어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셨다.
이처럼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르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하느님 뜻에 따라야 하고,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매일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듯이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세 번째로 묵상해야 할 점이다. 우리가 지고 가는 십자가가 너무 크고 무거워 포기하고 싶을 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주소서.”라고 기도했을 때,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주님처럼 주님의 뒤를 따라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
넷째로, 예수님께서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당신 자신을 인류 구원을 위한 희생제물로 봉헌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뜻을 이루셨다. 이는 곧 하느님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사건이다. 그래서 그것을 이미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 무엇일까?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자기를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십자가상 희생제물로 봉헌하셨을 때,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 희생제물로 자신을 봉헌하심으로써 악마는 심판받고 쫓겨났다. 악마는 패배자이다. 그러므로 악마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묵상해야 할 점은 악마는 패배자라는 점이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자기라는 우상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기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갈 때 악마가 패배한다는 점이다.
사순절이 막바지로 접어드는 오늘 1) 우리는 현세적 이익을 구하기보다 영원한 생명을 구해야 한다. 2) 자기를 버리고 주님께 의탁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한다. 3) 우리도 주님처럼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뒤를 따라 제 십자가를 져야 한다. 4)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사탄을 심판하시고 쫓아내셨으므로,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도 주님 뒤를 따라야 한다는 점을 잘 묵상하고, 주님의 뒤를 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