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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대축일 낮 미사(요한 20
- 부활 제2주일(요한 20
- 31-33ㄱ. 34-35)
- 1-10)
- 19-31)
- 16-20)
- 1-11)
- 27-38)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루카 2
- 27-30)
- 21-28)
- 22-40)
- 14-21)
- 39-45)
- 성탄 밤 미사(루카 2
- 19-23)
- 51-58)
- 1-9)
- 1-8)
- 연중 제17주일 가해(마태 13
- 성령강림대축일 (요한 20
- 1-14)
- 1-12)
- 1-6)
- 1-13)
- 주님 공현 대축일(마태 2
- 1-18)
- 15-20)
- 16-21)
- 부활 제5주일 다해(요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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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마태 28, 16-20)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본문
지난 주일 복음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말씀이었다. 어떤 부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은 무엇을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므로, 1) 계명을 지키고, 2)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오늘 제1 독서는 하느님께서 시온으로 모든 민족이 모이게 하시어 그들의 심판관이 되시므로 평화를 누리리라는 예언이며, 제2 독서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으면 구원받으리라는 말씀이다. 오늘은 모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기도의 날로서, 복음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이다.
유다 이스카리옷을 제외한 11명의 제자는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전통적으로 산이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 소중한 장소이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도 산이고,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해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천국 영광을 보여주신 곳도 높은 산이다.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활을 마감하시면서 마지막 말씀을 전하시기 위해 제자들을 산으로 부르셨다. 산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 말씀을 듣고, 천국 영광을 맛보는 소중한 장소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산으로 부르셨다.
오늘 우리가 첫째로 묵상할 점은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산으로 부르신다는 점이다. 산에 올라와 당신을 느끼고, 당신 말씀을 듣고,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 새 생명을 얻도록 산으로 부르신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있어서 산은 어디일까?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 느끼며 하느님 말씀을 듣는 장이 우리가 가야 하는 산이다. 하느님 말씀인 성경이 산이고, 주님의 성체가 모셔진 성전이 산이고, 우리가 드리는 기도, 찬미하는 성가가 산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듣고 묵상하며, 성체 조배와 묵주 기도를 드리고, 찬미의 노래를 시간 있는 대로 불러야 한다.
둘째, 우리 안에 의심의 마음이 들어도 괜찮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했지만, 더러는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심한 사람들이 열한 제자 가운데 있었는지 부르심을 받은 다른 사람 가운데 있었는지는 모른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 자체를 의심할 수도 있고, 지금 만나는 분이 예수님이신가를 의심할 수도 있다. 여하튼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의심이 있다. 의심 없는 마음은 없다. 사람은 완전하지 않기에 완전히 알 수 없다. 완전히 알면 믿음이 필요 없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는 믿음이 없다. 하느님을 직접 뵙고 완전히 알기 때문에 믿음이 없고, 희망이 완전히 성취되었기 때문에 희망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모든 것이 완전하기 때문에 사랑밖에 없다. 완전한 사랑, 기쁨과 평화가 가득한 사랑만 있다.
믿음은 세상에만 있다. 그래서 믿음 속에는 의심이 있다. 의심 없는 믿음은 맹신이다.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믿는 맹신이 문제를 일으킨다. 지난 5월 15일 인천의 한 교회에서 죽은 17살의 여고생도 기쁜소식선교회 신도들의 맹신이 부른 참극이다. 정신 질환이 있는 여고생이 마귀 들렸으니 마귀를 쫓아내야 한다고 소녀를 감금하여 묶고 폭력을 행사하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 과거에도 정신병자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낸다고 복숭아 나뭇가지로 때려죽이는 일이 많이 있었다. 대부분 하느님을 팔고, 개신교에서 갈라진 이단들이 빚는 참극이다. 개신교의 1/4가 이단이라고 하니, 그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믿음 속에 의심이 있으므로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믿음은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신을 지그시 눌러 버린다. 우리가 맺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의심이 들 때가 얼마나 많은가? 관계가 깊고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의심이 더 생긴다. 전혀 관계가 없으면 믿음도 불신도 없다. 그렇지만 그 의심을 지그시 눌러 버리고, 상대를 믿는다. 어떨 때는 믿을 수 없어도 믿어준다.
그러므로 믿음이 부족해도 전혀 관계가 없다. 제자들은 더러 의심했지만, 그들이 성령을 받은 후, 온전히 변하여 예수님을 주님이요,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는 사도가 되었다. 하느님 체험을 하면, 성령을 받으면, 달라진다. 그러므로 지금 믿음이 부족해도 걱정하지 말고,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기를 청하자.
셋째,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라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이민족에게 하느님을 전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만 선택된 백성이고, 다른 민족은 하느님 백성이 아니므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오래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대교로 개종하는 이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긴 한다. 스스로 깨달아 찾아왔으므로 그들도 선택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편협한 믿음을 배척하신다. 그래서 모든 민족,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신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이 소중하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 16) 그러므로 모든 이를 제자로 삼아야 한다.
제자는 스승으로부터 배운다. 책도 귀한 고대에 제자는 스승이 전해준 것만 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루카 6, 40)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가 당신 제자가 되어 당신께서 가르치신 것을 행하라고 명령하셨다. 주님의 가르침과 명령은 무엇인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 34)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고(마태 5, 44),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요한 15, 13) 사랑이다. 사랑은 희생이며, 봉사이고, 베푸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신 것처럼 자신을 내주는 것이다.
교회 역사 안에 이러한 희생과 봉사의 사랑을 실천한 성인들은 셀 수 없이 많다. 많은 성인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며 살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며 베풀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다. 세례란 하느님께 나아가는 중요한 예식이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실 정도로 중요하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며, 하느님 나라를 물려받을 자격을 갖춘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녀가 되는 의식이 세례이다. 그러므로 주님 말씀을 지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 나라를 상속받도록 세례를 주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임마누엘 하느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시다.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강생하신 하느님이시다. “함께 있겠다.”는 말씀은 지켜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힘으로 하도록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두셨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루카 12, 7). 호수 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보고 두려워 소리를 질러대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셨다(마태 14, 26-27). 주님과 함께하면 두려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주님께서 해주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은 모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기도의 날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도록 산으로 부르신다. 당신을 만나고 느끼며 당신 말씀을 듣고 새 생명을 얻으라고 부르신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며 사랑하시는가를 느끼고, 이를 모든 이에게 전하라고 하신다. 우리 믿음이 부족하여 의심이 들어도 괜찮다. 의심했던 제자들도 성령을 받은 후에 온전히 변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 충만해지기를 기도하자. 주님께서 함께 계시어 주님께서 해 주심을 믿고 복음을 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