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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 가해(마태 1, 18-24) 믿음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주님을 맞이하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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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 가해(마태 1, 18-24) 믿음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주님을 맞이하자.

세심정 2022. 12. 15. 10:56

지난 주일 복음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예언자, 소명에 충실한 세례자 요한에 관한 말씀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오시는 주님을 합당하게 맞이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소명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함을 보여주었다. 소명에 충실한 삶은 1)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 자기가 해야 할 일, 소중하고 귀중한 일을 먼저 하는 것이며, 2)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즉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 마음속에서 증오, 분노, 시기, 질투 등의 악감정을 밀어내고 사랑, 기쁨, 평화, 온유, 성실, 절제 등,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사는 것이며, 3) 하느님의 명령대로 사는 것, 온갖 생물을 다스리고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생태계와 환경을 보전해야 한다. 물자 절약, 재활용, 화학 제품이나 석유 제품을 덜 사용함으로써 병들어 가는 세상을 보호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성탄절을 눈앞에 둔 대림 제4주일에 교회가 선택한 복음은 주님 탄생의 비화를 기록한 마태오복음 118절 이하의 말씀이다. 오늘 복음은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한 모범으로 요셉 성인의 자세를 보여준다. 요셉 성인은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사셨는가?

 

먼저 요셉 성인의 직업은 집 짓는 것이다. 성인의 직업을 목수라고 했는데, 영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집을 지을 때 나무를 사용하기 때문에 집 짓는 사람을 킹 제임스 성경에서 목수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집을 돌로 짓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는 석수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갈릴래아의 나자렛이라는 시골에서 건축장이가 얼마나 잘 살았을까? 성전에서 맏아들 탄생에 대한 제물로 비둘기 두 마리를 봉헌한 것을 보면 상당히 가난했음이 틀림없다. 가난했기 때문에 많이 배우지도 못했을 것이고, 율법을 잘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율법을 잘 지키지도 못했기가 쉽다.

부자 청년(마태 19, 16이하)은 율법을 잘 지켰다. 그가 율법을 잘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은 부유했기 때문이었다. 부유한 사람은 남의 것을 훔치거나, 남을 속일 필요가 전혀 없다. 죄를 짓지 않아도 충분히 살 수 있기 때문에 죄를 지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이 없고, 먹을 것이 없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때로는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고, 속이기도 하며, 죄를 짓기 쉽다. 그래서 가난이 .

그런데 성인은 달랐다. 그는 가난하면서도 죄를 짓지 않았다. 성인을 가리켜 의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의로운 사람이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뜻하고, 율법을 잘 지켰으므로 깊은 신앙을 갖고 죄를 짓지 않는 의로운 생활을 했다. 그러므로 성인은 예수님의 양부가 되기에 충분했다. 만일 그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죄에 빠져 살았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의롭게 키우실 수 있었겠는가? 어린 예수님이 열두 살 때, 자기를 찾는 성모님과 성인께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라고 말할 정도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깊이 모시는 신앙을 어떻게 갖을 수 있겠는가? 성인께서 예수님께 깊은 신앙심을 심어주셨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율법, 계명, 성경에 충실한 사람, 하느님 말씀을 잘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죄를 짓지 않도록 해야 하며, 죄를 지었다면 죄의 굴레 안에 머물지 말고, 빨리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죄를 싫어하시므로 죄 안에 머무르고, 죄를 즐기지 말아야 한다.

 

둘째, 성인은 사랑이 충만한 분이었다. 성인이 사랑 없이 율법만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었으면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성모님을 율법(신명 22, 23-24)에 따라 돌을 던져 죽였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약혼도 혼인과 똑같은 구속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은 사랑이 충만했기에 성모님을 처형할 수 없었다. 아마도 성모님의 잉태 소식을 들은 후, 성인은 며칠 동안 고민했을 것이다. ‘율법을 지켜 처형하느냐? 율법을 지키지 않고 살리느냐?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성인은 성모님과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했다. 그 까닭은 성모님이 아이를 잉태할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 남자와 함께 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였다. 성인은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모님을 배려해서, 성모님이 사랑하는 남자와 살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했다. 사랑은 배려이다. 배려 없는 사랑은 없다. 사랑이 큰 만큼 배려도 크다. 성인은 그처럼 사랑이 충만한 분이었다.

그러므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사랑이 충만해야 한다. 마음속에 사랑을 담고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늘 사랑을 노래해야 하고, 사랑을 키워가야 한다. 사랑을 거스르는 생각이나 감정 등을 절제함으로써 마음속에서 사랑이 숨 쉬고 자라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성인은 깊은 믿음을 가진 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 주님의 천사가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명령에 따라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꿈은 하느님께서 당신 뜻을 계시하시는 도구로 종종 사용되었다(창세 20, 3; 28, 12; 37, 5 ). 사실 하느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 예언자가 있으면 나 주님이 환시 속에서 나 자신을 그에게 알리고 꿈속에서 그에게 말할 것이다.”(민수 12, 6)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렇지만 성인이 꿈속에서 주님의 천사가 하신 말씀을 듣고 따르기란, 깊은 신앙을 갖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깊은 믿음이 있어야만 천사가 하신 말씀을 따를 수 있다. 성인은 이미 성모님과 파혼하기로 작정하셨다. 그런데 꿈을 믿기가 쉽겠는가! 꿈에 말씀하신 분이 주님의 천사라고 믿기가 쉽겠는가! 천사가 하신 말씀을 들었다고 자기 결정을 바꾸기가 쉽겠는가! 이 모든 것은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깊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자기 생각, 결정까지도 바꿀 수 있는 믿음, 오직 주님 뜻을 따르기 위해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굳센 믿음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성인은 믿음을 실천하는 분이었다. 성인은 천사의 명령대로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강생하신 하느님을 아들로 키우기가 얼마나 어렵겠는가! 천사가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성인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기가 무척 두려웠으리라. 그런데 그런 모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강생하신 하느님을 아들로 키우기로 굳게 결심하고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했다. 강생하신 하느님을 아들로 키우는 데 있어서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모두 이겨낼 것을 결심하고 성모님을 아내로 맞이했다. 성인은 그처럼 믿음을 실천하는 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 믿음은 삶이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 17)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2, 24)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2, 26)

 

대림절의 막바지인 오늘, 요셉 성인을 통해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1) 율법, 계명, 성경에 충실하고, 죄에 머무르지 말라고 가르치시며, 2) 사랑이 충만하여 사랑으로 살고, 3) 오직 주님 뜻을 따르는 깊고 굳센 믿음으로 살며, 4) 믿음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라고 초대하신다. 그럼으로써 천국 영광을 누리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믿음과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주님을 맞이하자. (2022.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