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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다해(루카 23, 1-49)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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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다해(루카 23, 1-49)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세심정 2025. 4. 11. 21:57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복음으로 시작한다. 겸손한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즈카리야의 예언(즈카 9, 9)에 따라 평화와 겸손을 상징하는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을 본 군중은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깔고 예수님을 해방자요 왕으로 환영하였다. 예수님께서 유대를 로마의 지배에서 해방하고 독립하여 다윗 왕국을 다시 건설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파괴, 재난의 시작을 예고하시는 등, 그들의 요구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시자, 군중은 원로단의 주장에 동조하여 예수님을 빌라도 법정에 고발하여 사형에 처하라고 소리쳤다. 원로단은 예수님을 1) 로마에 반역하는 반역자로 고발함으로써 예수님과 제자들 모두를 사형에 처하고, 2) 십자 나무에 매달려 저주받아 죽게 함으로써 예수님과 추종 세력들을 모두 제거하고,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하였다.

오늘 우리가 첫째로 묵상할 점이다. 내 생각, 내 주장, 고집이 하느님과 멀게 하고 죄를 짓게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생각과 다르고,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의와 진리까지도 거부하곤 한다. 그만큼 자기애가 강하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처럼 살아야 옳다. 그래야 참된 그리스도인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이익과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지 않는가? 묵상하자.

 

둘째, 로마 총독 빌라도는 원로단이 고발한 예수님을 보고, 이 문제는 유대인들 사이의 종교적 문제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귀찮아하면서 예수님을 갈릴래아 영주인 헤로데에게 넘겼다. 헤로데는 예전부터 예수님에 대해 궁금해했지만, 막상 예수님을 만나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고, 도로 빌라도에게 넘겼다. 빌라도와 헤로데가 전에는 서로 원수로 지냈지만, 예수님을 넘겨주고 받으면서 서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악은 악끼리 통한다.’ 유유상종이다. 악은 정의와 진리를 거부하고 박해하면서 한 통속이 되어 간다.

 

셋째, 헤로데로부터 예수님을 도로 넘겨받은 빌라도는 원로단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넘겨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다가 키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고, 예수님을 뒤따르게 하였다. 시몬은 얼마나 억울할까? 괜히 길을 잘못 갔다가 남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되었으니. 그러나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았을 때, 내가 진 십자가가 주님의 십자가임을 알았을 때, 그는 얼마나 기뻤을까? 그렇다. 우리가 지고 가는 남의 십자가는 남이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이다. 나는 남의 십자가를 지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간다.

 

넷째, 예수님을 따라가는 무리 안에는 예수님 때문에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예수님 때문에 통곡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도움받은 사람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예수님과 좋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리라. 나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도움받고 있는가?

 

다섯,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에게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라고 말씀하신다. 누구를 위해 울어야 하는가? 피조물인 사람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위해 울 수 없다. 죄악에 빠진 자신과 세상을 위해 울어야 한다.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구하며, 나와 세상의 회개를 위하여 통곡해야 한다.

 

여섯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해하고 죽이려는 모든 자를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한다. 그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짓는지를 알지 못하니, 더더욱 기도하신다. 우리도 주님처럼 기도해야 한다. 나를 해하는 자들을 용서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일곱, 예수님 옆에 두 죄수가 매달렸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예수님 옆에 있다니, 얼마나 복된가! 우리도 늘 예수님 옆에 있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예수님 옆에 있으며, 하느님 나라에서도 옆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 죄수는 예수님 옆에 있었으면서도 예수님을 모독했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런데 다른 죄수는 그 죄수를 꾸짖고, 예수님께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청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었다. 예수님 옆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예수님께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예수님께 자신을 맡길 때,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들어간다.

 

여덟,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두 갈래로 찢어졌다. 성전 휘장은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는 지성소와 하느님께 제사를 봉헌하는 성소 사이를 가르는 휘장이다. 휘장이 찢어짐은 하느님께서 모든 이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심이고, 그 결과 죄에 빠진 모든 이는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상 희생 제사를 봉헌하심으로써 우리가 죽지 않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 우리가 예수님의 제사를 통해 또 하나의 예수님이 됨으로써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음을 상징한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신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외아들을 보내시어 십자가상 죽음을 통해 우리를 또 하나의 당신 아들로 만드시어 우리를 살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소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기쁘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