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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38)
- 16-21)
- 1-18)
- 성령강림대축일 (요한 20
- 22-40)
- 부활 대축일 낮 미사(요한 20
- 31-33ㄱ. 34-35)
- 39-45)
- 19-31)
- 성탄 밤 미사(루카 2
- 1-8)
- 14-21)
- 부활 제2주일(요한 20
- 19-23)
- 16-20)
- 주님 공현 대축일(마태 2
- 1-9)
- 1-12)
- 15-20)
- 1-6)
- 27-30)
- 1-11)
- 21-28)
- 연중 제17주일 가해(마태 13
- 51-58)
- 1-14)
-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루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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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5주일 다해(요한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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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부활 성야 다해(루카 24, 1-12) 죽음을 통한 부활 본문
부활 축하.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은 실패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병정들에게 붙잡혀 끌려가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마르 14, 50). 으뜸 제자 베드로는 대사제 카야파의 관저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열렬히 환호했던 군중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댔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십자 나무에 매달리심으로써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자”(신명 21, 23)가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배척받고 홀로 수난과 죽임을 당하셔야 했다. 그러니 처절한 실패가 아닌가?
그런데 그러한 실패 속에 하느님의 뜻, 인도하심이 담겨 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임으로써 예수님이 메시아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저주받은 자일 따름이라고 증명하고 싶어 했지만, 그 안에 하느님의 숨은 뜻이 담겨 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기워 갚도록 하시기 위해, 당신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저주받도록 하셨다. 예수님께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 46)라고 기도하실 정도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저주받도록 하심으로써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도록 하셨다. 실패처럼 보이는 죽음 속에 인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숨은 뜻이 담겨 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임을 당하셨듯이 많은 착한 이가 고통받고 죽임을 당한다. 착한 이들이 당하는 고통, 손해, 질병이나 재해, 그리고 죽음 등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실패라고 말할지라도 실패가 아니다. 우리가 겪는 실패는 꼭 패배가 아니다. 그 속에 하느님의 숨은 뜻이 담겨 있다. 실패를 통해서 주님의 십자가에 동참하며, 주님과 함께 세상의 죄를 대신 기워 갚는다. 그러므로 손해와 실패를 두려워하여 선을 포기하고 악을 행해서는 안 된다. 손해 보고 실패할지라도 선을 행하는 것이 하느님 뜻이고, 하느님과 함께하며,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는 것이다. 신앙의 선조들이 얼마나 많이 죽임을 당했는가! 세상의 눈으로 보면 실패자요 패배자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영예롭게 하시어 영광의 월계관을 주셨다. 신앙의 선조들은 오로지 주님을 닮기 위해 목숨을 아낌없이 바쳤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십자 나무에 매달려 운명하심으로써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같은 몇몇 여인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기억이 너무나도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아마도 예수님께서 그들을 치유해 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셨으며, 삶의 기쁨과 건강을 되찾아 주셨기 때문이리라.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병이 낫고, 마귀가 쫓겨나 기쁨의 새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니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얼마나 가득했겠는가! 그들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주간 첫날 새벽에,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주님의 부활을 생각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다만 은혜를 베푸신 주님 시신에 향유를 발라 장사지내려는 사랑의 마음밖에 없었다. 남성도 아닌 여인들이, 낮도 아닌 새벽 일찍이, 주님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주님 무덤에 갔다. 그 정도로 그들은 주님을 사랑했다. 사랑은 좋은 관계를 맺게 한다. 사랑 없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사랑이 주님 부활을 알도록 한다.
이 여인들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이들이 주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다면, 무덤에 가지도 않았고,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가장 먼저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그러므로 우리 안에 사랑, 주님에 대한 사랑을 키워야 한다.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 한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고 느낄지라도 사랑을 외치며, 잠자고 있는 사랑을 일깨워야 한다.
셋째, 이날은 주간 첫날이다. 이날은 하느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신 날이다. 바로 그 첫날 주님께서 부활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날을 ‘주님의 날’이라고 부르고, 주일을 주님께 봉헌하며 거룩히 지낸다. 주간 첫날인 주일은 여인들이 향유를 들고 주님 무덤에 갔던 것처럼 주님을 찾아가는 날이다. 교회는 주일 미사 참석을 의무로 정했다. 주님께 나아가고, 주님께 봉헌하는 것이 그토록 소중하고 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일을 주님을 위한 날로 거룩히 보내자.
여인들이 무덤에 도착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여인들은 무척 당황했다. 요한복음은 이 상황에 대해 마리아가 울면서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고, 마리아는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고, “라뿌니”라고 주님을 불렀다고 기록했다. 오늘 복음은 그렇게 당황하고 있을 때,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들이 나타나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라고 기록했다.
여인들이 주님을 애타게 찾고, 주님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고 당황해할 때, 주님께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응답하셨다. 눈부시게 차려입은 두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주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천사임은 확실하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전에 하신 말씀대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알려준다.
그러므로 주님을 애타게 찾아야 한다. 주님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고 당황할지라도 주님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직접 부르시던지, 천사를 통해 말씀을 들려주신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마태 7, 7-8)라는 주님 말씀처럼 주님을 찾고 또 찾아야 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응답하신다.
천사들의 말을 들은 여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었다. 이 말씀은 ‘레마’로 여인들의 의식에 깊이 새겨진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세 번이나 예고하셨는데, 제자들은 이 말씀을 허투루 들었지만, 여인들의 마음속엔 이 말씀이 새겨졌고, 이 말씀을 기억해 내고 믿었다. 그래서 여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천사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상기하여 주님께서 부활하셨음을 믿었고, 이 일을 열한 제자와 다른 이들에게 알렸다. 즉, 여인들이 주님 부활을 믿은 것은 주님께서 예고하셨던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 말씀, 성경 말씀을 ‘레마’로 듣고, 감동하고, 마음속에 새겨 간직하는 것이 주님 부활을 믿도록 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말씀을 통해 감동하고, 마음속에 새기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주님을 체험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부활하셨다. 그러므로 실패가 꼭 패배는 아니다. 실패를 통해서 영광의 월계관을 받을 수 있다. 사랑을 키워라. 그래야 주님께 가까이 나아간다. 주간 첫날인 주일은 주님을 찾아가는 날이다. 주님을 느끼지 못해 당황할지라도 주님을 애타게 찾으면 주님을 만난다. 하느님 말씀을 듣고 감동받아 마음속에 새겨 간직해라. 그러면 주님을 체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