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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부활 제4주일 다해(성소 주일 : 요한 10, 27-30) 생명을 주시는 주님 본문
지난 주일은 주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대목이었다. 인생의 고비가 주님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되며, 주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기적을 이루므로 하느님 말씀을 외우고 익혀 실천해야 한다. 153마리 물고기 가운데 몇 마리를 주님께 바치니 주님께서 잘 익혀 제자들에게 돌려주셨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주님께 일주일의 몇 시간을 주님께 봉헌하자. 또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양을 돌보는 것임을 묵상했다.
오늘 제1 독서는 사도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유다인들의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여 많은 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씀이며, 제2 독서는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환란을 겪은 그리스도인들을 돌보시고 생명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복음은 주님께서 당신 양을 잘 알고 보호하시어 지켜주신다는 내용이다.
부활 제4주일은 ‘성소 주일’이다. 성소 주일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중인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 37-38)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정했다. ‘성소’란 넓은 의미에서 ‘거룩함에로의 부르심’이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 44)라는 말씀에 따라 모든 이가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부르심 받았다. 그러나 일반적 의미에서 ‘성소’란 특별히 사제, 수도자, 선교사 성소를 가리키며,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성소를 계발하고 키우는 일에 꾸준히 기도하고 활동하며 협력하도록 일깨우도록 성소 주일이 마련되었다. 그러므로 오늘 성소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제, 수도자, 선교사들이 하느님 뜻에 따라 거룩하고 충실하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겠다.
오늘 복음은 양과 목자의 관계를 통해,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한다.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우기가 시작되면 양을 이끌고 광야로 나가서 방목하는데, 여러 사람이 자기 양들을 끌고 나가 방목한다. 밤이 되면 양을 보호하기 위해 양들을 모두 같은 울타리나 돌담 속에 가둬두고 목자들이 양을 지킨다. 다음 날 아침, 목자들은 자기 양을 이끌고 나가는데, 목자들의 소리에 따라 양들이 소리를 정확히 알아듣고 따라 나온다. 마치 개가 멀리서 자기 주인의 차 소리를 알아듣듯이, 양들도 자기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고 따라간다. 목자와 양의 교감이 잘 형성되어 대단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와 양의 이러한 관계를 통해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시는데, 먼저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라는 말씀으로 당신 양이 누구인가를 가르치신다.
주님의 양, 즉,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주님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 목소리를 알아들어야만 한다. 주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목소리로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1) 양심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런데 양심이 시대, 환경, 문화에 따라 다르다. 도둑, 강도의 양심과 순수한 수도자의 양심이 다르다. 여기서 양심은 때 묻지 않은 양심, 선을 추구하고 악을 거부하는 양심이다. 순수한 양심을 통해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2)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인간이 만들어낸 실정법과는 달리, 인간의 이성이나 인간 본성에서 도출된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법’을 의미한다. 시대나 장소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적용되는 정의와 도덕의 원칙이다. 이를테면 살인 금지,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피함 등이다. 양심과 자연법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사람은 누구나 양심과 자연법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이는 창조주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주님 말씀이 3) 성경이다. 성경은 계시된 하느님 말씀이다. 성경을 통해 주님 말씀을 듣고 익혀 주님 말씀을 알아듣고, 주님을 만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쓰고, 익히며 외우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 저녁 기도를 하면서 양심 성찰과 매일의 삶을 반성하는 기도를 바치는 것은 주님 목소리를 알고, 주님과 가까이 가는데 꼭 필요하고 중요하다. 더욱이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외우고, 묵상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하다.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자.
둘째,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알고,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따른다. 우리는 주님을 잘 알지 못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를 속속들이 아신다. 성격이나 기질, 정신과 육신의 건강 상태, 약점과 허물, 잘못과 죄 등등, 속속들이 아신다. 나를 아시기에 나에게 필요한 처방을 해주신다. 주님을 거부하지 말고, 주님을 믿고 나를 아시는 주님께서 이끄시고, 지켜주시고, 생명을 주시도록 온전히 맡기면 된다.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살면 된다.
나도 나를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를 잘 알고 계신다. 나를 아시는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하며 살자.
셋째,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주님께서 강생하신 까닭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3, 16-18)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사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한가!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코헬 1, 2-3)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낫고, 태어났어도 빨리 떠나는 편이 낫다. 영원한 생명이 있기에 삶은 의미와 보람이 있고, 사는 것이 소중하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미 주셨다.
마지막으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심을 확실히 보장하시는 말씀이다. 사탄이나 그 어떤 존재도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를 빼앗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지 못하도록 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 확실하다고 보장하신다.
양심, 자연법, 성경을 통해 들려주시는 주님 말씀을 잘 듣고, 나를 아시는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늘 기도하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자. 특히 사제와 수도자, 선교사들이 주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여 인류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