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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 다해(루카 17, 5-10) 믿음의 힘 본문
지난 주일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말씀이었다. 현세에서 건강하고 형제도 많으며 엄청난 부를 누렸던 부자가 구약의 믿음에서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데, 그는 지옥에 떨어졌다. 반대로 종기투성이로 돌볼 사람도 전혀 없이 굶주리던 라자로는 구약의 믿음에서 보면 하느님으로부터 큰 벌을 받은 죄인인데, 그는 천국에 들어갔다. 그 까닭이 무엇일까? 부자에게는 하느님의 마음, 사랑,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이 전혀 없었고, 라자로를 죄인이라고 비난하고 멸시하는 마음만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 하느님 마음이 없었고, 비난, 멸시, 무시 등의 마음만 있었기에 그는 지옥에 떨어졌다. 지옥은 하느님 마음이 없고, 비난, 멸시, 무시 등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역으로 라자로는 그의 이름이 뜻하는 바대로 하느님의 도우심을 기도했다. 그는 기대할 사람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하느님만 붙잡고, 하느님의 도우심만 청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를 당신 나라로 받아들이셨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비난 멸시 등의 마음을 버리고 하느님 마음으로 채워야 하며,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긴 했지만, 믿음이 너무나도 부족함을 깨닫고 있었다. 사실 그들은 어린이에게 들린 마귀, 즉 새끼 마귀조차 쫓아내지 못할 정도로 믿음이 약했다. 그래서 아이 아버지는 예수님께 부탁드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셨다. 제자들이 자기들은 왜 마귀를 쫓아내지 못했느냐고 예수님께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답하셨다(마태 17, 14-20).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에 답하지 않으신다. 왜 그러셨을까?
먼저 믿음이란 누가 더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음은 은총이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믿음 깊게 태어난다. 이를테면 소화 데레사 성녀와 같은 이들이다. 성녀는 네 살 때 수녀가 되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깊은 믿음을 지니고 태어났다. 수녀원에서 21세가 되어 입회하라고 권유했지만, 수녀가 될 열망으로 교황님을 알현하고 간청하여 15살에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했다. 수도원에서 그녀가 맡은 일은 아주 작은 일, 빨래방, 주방에서 일했고, 수련장 보좌 역할을 했을 따름이다. 그녀는 작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하느님과 깊은 만남을 가졌고, 마지막 결핵에 걸렸을 때는 자신의 병이 낫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자신이 먹는 약의 효과가 전교 지방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처럼 믿음의 은총을 받은 이들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깊은 믿음을 지닐 마음의 밭이 있다.
또한 믿음은 체험이다. 하느님 체험을 통해 믿음이 깊어진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분, 그리고 수많은 성인이 하느님 체험을 통해 깊은 믿음을 지녔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살아계시며, 자신에게 나타나셨다는 말을 전했지만, 그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시골로 가던 두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고 말을 전했지만, 사도들은 그들의 말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서야 비로소 믿었다(마르 16, 10-14). 그리고 성령을 받은 후에 비로소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였다. 그러므로 하느님 체험이 중요하다. 하느님 체험을 통해 믿음이 성장한다.
그런데 이 체험이 각각 다르다. 어떤 이는 커다란 체험을 하고, 어떤 이는 작게 체험한다. 우리는 큰 기적, 큰 체험을 원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두에게 그렇게 큰 체험을 주지 않으신다. 그 까닭은 각자에게 알맞은 체험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성모님이나 사도 바오로 같은 분은 얼마나 큰 체험을 했는가! 그분들은 그 체험을 받아들일 만하기 때문에 큰 체험을 주셨고, 큰 체험을 통해 더욱 큰일을 하셨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큰 체험을 하면 자칫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체험을 주시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 작은 체험을 차곡차곡 소중히 쌓아 큰 체험으로 만들면 된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내 작은 체험, 이를테면 성경을 읽으면서 받은 작은 감동들, 기도를 통해 느낀 작은 체험들, 그 외의 여러 가지 체험을 소중히 간직하여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에 답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들도 언젠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들의 믿음이 깊어지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의 요청에 답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 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앗이다. 그런데 그 작은 씨앗과 같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말씀이다. 믿음은 그만큼 소중하다. 믿음 없이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 16)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더 깊이 해야 한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종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종은 들에서 일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도 주인의 시중을 들어야 한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 한 후에서야 먹고 마실 수 있다. 종은 자유의지가 없고, 자기 재산이 없다. 종은 무조건 주인의 말씀에 복종해야 하고, 종이 가진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이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로서 하느님의 종이다. 하느님께서 주님이시므로 우리는 하느님 뜻대로 살아야 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우리 것이 아니라 하느님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느님 것을 관리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관리하는 모든 것을 하느님 뜻대로 사용해야 한다. 종이 주인에게 충성하듯이 우리는 하느님의 종으로서 하느님께 충성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힘과 시간을 주님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하느님의 종인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지체이다.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세우신 이들은, 첫째가 사도들이고 둘째가 예언자들이며 셋째가 교사들이다. 그다음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들, 그다음은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는 은사, 지도하는 은사, 여러 가지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다(1코린 12, 27-28). 이처럼 우리에게 맡겨 주신 임무는 서로 다르다. 그러므로 각자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해야 할 일을 충실히 수행하며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면서도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처럼 지극한 겸손을 지녀야 한다.
오늘 깊은 믿음의 신앙인이 되자. 하느님을 알고 느끼고 체험하여 더 깊은 믿음을 갖자. 하느님 체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키워나가 산을 옮길 수 있는 깊은 믿음을 갖자. 그러면서도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종임을 깨닫고, 내 뜻과 고집을 내세우지 말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며, 내가 맡은 재산을 내 것이라고 고집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믿음을 갖자. 그러면서도 겸손한 신앙인이 되자. 천국을 살아가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