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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일 가해 2(마태 21, 28-32) 속 마음을 가꾸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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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6주일 가해 2(마태 21, 28-32) 속 마음을 가꾸자

세심정 2023. 10. 1. 15:06

지난 주일 복음은 포도밭 주인의 비유였다. 포도밭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9, 12, 오후 3, 5시까지 장터에 나가서 일꾼들이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주인은 불쌍한 이들에게 먼저 일당을 줌으로써 조금이라도 빨리 굶주린 가족을 돌보도록 해주었다. 포도밭 주인은 곧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능력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능력도 없고, 쓸모도 없는 사람, 사람들이 쓰레기처럼 여기는 사람까지도 소중히 여기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느님의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복음은 두 아들의 비유로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들려주신 말씀이다.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고 거절했다가,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아버지가 다른 아들에게 가서 일하러 가라고 했는데, 그는 가겠다고 대답만 하고, 가지 않았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했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그들은 맏아들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지 않은 그들보다 믿고 따른 세리와 창녀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본래 광야에서 떠돌아다니며 목축을 하던 민족으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강한 부계 사회이다. 광야와 사막이라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하게 자라야만 했다. 아버지는 이를 위해 자식을 매로 다스리며 강하게 키웠고, 자식이 철저히 순종하도록 가르쳤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고 대답해서도 안 되고, 대답할 수도 없다. 그런데 맏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고 대답했고, 다른 아들은 가겠다고 대답했으면서도 가지 않았다. 이러한 일은 이스라엘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아버지가 워낙 착한 아버지였는지, 아니면 자식을 매로 다스리지 않고 편하게 키웠는지, 두 아들 모두 아버지를 거슬렀고, 불효를 저질렀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점은 두 아들 모두 불효를 저질렀듯이, 인간은 능력이 있거나 없거나, 착하거나 악하거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점이다. 죄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죄의 경중과 죄질이 다르겠지만,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다.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높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하느님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하는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높이며 백성 위에 군림하곤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처럼 자신을 높이는 이들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므로,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는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셨다.

 

맏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싫다고 거부했지만, 나중에 일하러 갔다. 아버지의 명령을 단호히 거부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철저히 순종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명령이 우선이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한 것은 하느님 아버지를 철저히 무시하고 공공연하게 죄를 지었음을 나타낸다. 이들은 세리와 창녀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죄를 지은 죄인들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세례자 요한의 말을 듣고 뉘우치고 하느님께로 돌아섰으며, 하느님 말씀에 순종했다고 말씀하신다. 이들이 겉보기에는 엄청난 죄인처럼 여겨지지만,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다. 이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세리와 창녀로 살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언제나 하느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죄인이지만, 속으로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이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무엘에게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 7)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세리와 창녀의 마음을 보셨고, 인정하셨다는 점을 우리가 생각해야 한다.

 

다른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가겠습니다, 아버지!”라고 즉각 확실히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일하러 가지 않았다. 원래부터 대답만 하고 일하러 가지 않으려고 마음먹을 수도 있고, 대답은 했지만, 사정이 생겨서 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겉으로는 아버지 명령을 충실히 지키는 효자이며 의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이들은 겉으로는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착하고 의로운 사람이지만, 하느님 말씀을 거역하는 죄인들이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바로 이 사람이다. 그들은 하느님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 같지만, 전혀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 마음속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전혀 없다. 그래서 하느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성읍에 수도원과 창녀촌이 길 하나 사이로 마주 보고 있었다. 수도자는 창녀 때문에 마을 남자들이 모두 죄인이 된다고 늘 창녀를 비난하며 살았다. 그런데 창녀는 늘 수도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삶을 뉘우치며 수도자처럼 살고 싶어 했다. 둘이 죽었는데, 창녀는 천국에 갔고, 수도자는 지옥에 떨어졌다. 지옥에 떨어진 수도자가 천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에 천사가 대답하기를 너는 창녀를 바라보며 늘 비난하고 살았는데, 창녀는 너를 바라보며 늘 너처럼 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너는 지옥에 떨어졌고, 창녀는 천국에 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겉모습을 바라보지 않고 속마음을 바라보시는 주님께서는 겉으로 의인이지만 마음속에 비난과 질시가 가득한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을 꾸짖으신다. 사람들로부터 천시받고 죄인 취급당하던 세리와 창녀의 속마음을 보시고 그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용서받아야 하는 죄인이다. 그러므로 마음 밭을 잘 가꾸어야 한다.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증오, 비난과 질시 등의 나쁜 감정을 잘 걸러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과 오만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 마음, 사랑, 자비, 용서, 배려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