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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일 가해(마태 21, 33-44) 주님께 감사드리자 본문
지난 주일 복음은 주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들려주신 두 아들의 비유였다. 아버지가 큰아들에게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고 했으나, 아들은 싫다고 대답한 뒤,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가겠다고 대답하고 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가겠다고 답하고 가지 않은 아들이 하느님의 말씀, 사랑을 잘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제와 원로들이고, 겉으로 말씀을 거부했지만 뉘우치고 간 아들이 곧 세리와 창녀들이라고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속마음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 사랑, 용서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복음도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들려주신 비유로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이다.
포도밭 주인이 포도밭을 일구고, 울타리를 치고, 포도즙을 짜는 확도 만들고, 도둑이나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망대까지 세웠다. 그러니 주인은 상당히 많은 금액을 사용하며 포도밭을 가꾸었다. 그런데 그에게 일이 생겨서 멀리 떠나야 했다. 주인은 포도밭을 소작인에게 내주고 떠났다.
주인이 누구에게 소작을 내주었겠는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나 도둑과 같은 사기꾼에게 내주었겠는가? 그렇지 않다. 주인이 생각할 때, 믿을 만한 사람,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에게 내주었으리라. 그러면 소작인들은 주인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일자리가 귀한 그 시대에, 주인이 밭에 많이 투자한 후 특별히 자기들을 뽑아 믿고 맡겼으므로 믿고 뽑아준 주인에게 감사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밭을 자기 밭처럼 생각하여 관리하고, 소출을 많이 내어 주인에게 합당한 소작료를 냄으로써 주인의 믿음에 보답해야 마땅하다.
예수님께서는 지도자 계급에 있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셨다. 그러므로 어떤 단체나 모임을 지도하거나 그 장을 맡은 이들이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비유이다. 지도자나 장은 하느님께서 그런 직책을 맡을 능력과 힘을 주셨으므로, 다른 이들보다 특히 더 감사해야 한다. 자기가 맡은 포도밭을 성실히 관리하면서 자기에게 그 힘을 준 주인에게 감사하며 살아야 마땅함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신앙인이 되자.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자. 사도 바오로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리 4, 6)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 18)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해야 한다. 내가 비록 가진 것이 적고, 건강하지 못하며,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하느님께 불림을 받았으므로 감사해야 한다. 우리 모두 천국 시민으로 불림을 받았으니 감사해야 한다.
포도 철이 되자 주인은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주인과 소작인은 대부분 6대 4, 또는 5대 5로 나누어 갖거나 일정량을 소작료로 주인에게 바친다. 소작인은 투자하지 않았지만, 포도밭을 가꿈으로써 4~5를 받는다. 당시 일자리가 거의 없는 시절에 일할 수 있고, 적절한 액수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가 멀리 있는 밭 주인에게 소작료를 충실히 바치면, 그는 계속하여 그 밭을 관리하며 잘 살 수 있고, 언젠가 그 포도밭을 주인으로부터 살 수도 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주인에게 소작료를 한 푼도 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포도밭을 영원토록 차지하고 싶었다. 그들은 주인이 멀리 있고, 주인에게 문제가 있어서 다시는 포도밭에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인이 보낸 종을 없애면 자기들이 그 밭을 영원히 차지하리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주인이 보낸 종을 하나는 심하게 매질하고, 다른 하나는 죽였으며, 심지어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심한 매질은 살가죽이 벗겨질 정도로 심하게 채찍질하는 것을 뜻하며, 돌을 던져 죽인 것은 하느님을 모독한 우상숭배자로 몰아 잔혹하게 죽인 것을 뜻한다. 소작인들이 그렇게 종을 죽였다는 것은 그들 마음이 얼마나 악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소작료를 내려고 하지 않았다.
잔인하고 악한 마음, 남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들려는 탐욕과 남을 해하려는 마음, 이런 악한 마음이 우리 안에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전범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대인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수없이 학살한 독일군이 붙잡혔는데, 이를 본 유대인들이 너무나 놀랬다고 한다. 그 까닭은 그 전범이 너무나도 수수하고 평범한 보통 사람, 착하고 선하게 보이는 사람, 자신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평범하고 착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잔인한 고문과 학살을 자행했다. 사람은 그렇게 변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 만찬에서 예수님과 11사도의 모델을 찾아 그림을 그렸는데, 유다 이스카리옷의 모델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서 유다스의 모델을 찾아 그림을 완성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예수님의 얼굴로 그린 모델이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자 예수님 같은 청년이 유다스 같은 사람으로 변했다는 말씀이다. 사람은 그처럼 변할 수 있다.
우리가 둘째로 생각해야 할 점은 우리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도 우리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소작인과 같이 탐욕적인 마음으로 변하고, 그 마음이 다른 이들을 비방할 수 있다. 소작인들처럼 종을 직접 죽이지는 않을지라도 마음속으로 죽일 수 있다. 예수님 같은 사람이 유다스 같은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마음이 건강하고, 평화와 사랑이 넘치며, 측은지심이 가득하도록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소작인들의 이러한 행실이 주인에게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 주인은 이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소작인들이 자기가 보낸 종을 알아보지 못하고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더 많은 종을 그들에게 보내어 소작료를 받아오도록 했다. 여기 주인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인의 심성이 곱고 아름답기에 소작인들이 자기가 보낸 종을 죽였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착각했기 때문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주인은 그만큼 소작인을 믿고 또 믿었다.
바로 이 마음이 하느님 마음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악을 행해도, 죄를 지어도 끝까지 믿어주신다. 하느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믿으신다.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뜬구름처럼 날려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며, 우리가 마음을 바꿔 하느님 마음으로 돌아오도록 애타게 기도하시며 기다리신다. 바로 그 마음, 하느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소작인들은 종들을 모두 죽였다. 그래서 주인은 친아들을 보내면서 아들만은 알아보고 소작료를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소작인들은 아들이 상속자이므로 상속자만 죽이면 포도밭을 온전히 차지할 수 있다고 믿고, 아들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아들을 죽인 것은 아버지를 죽인 것과 다름없다. 그들은 포도밭을 차지하기 위해 주인을 죽여 버린 것이다. 자신들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며 친지인 주인, 자기들을 믿고 밭을 내어준 주인, 자기들이 살아갈 바탕을 마련해준 주인을 탐욕 때문에 가차 없이 죽여 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아들을 죽임으로써 포도밭을 영원토록 차지하고 영원히 살리라고 믿었다. 소작인들은 영구히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갖은 악행을 저질렀지만, 결국 그들은 포도밭도 차지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리라고 착각한다. 죽어가면서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른 사람은 다 죽어도 나는 죽지 않으리라는 이상한 믿음이 우리에게는 있다. 그래서 베풀기보다 받기를 더 좋아하고, 쓰기보다 모으기를 더 좋아한다. 그러나 우리는 죽는다.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인 묘지 입구에는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문구를 쓴 비석이 세워져 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그러므로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살아감에 감사드리자.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하느님 마음으로 살아가자. 우리를 끝까지 참아주고 믿어주며 용서하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자. 죽음을 기억하며, 언제 죽어도 미련없이 죽을 수 있도록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