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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 가해(마태 23, 1-12) 낮추고 섬기는 삶

세심정 2023. 11. 4. 14:30

지난 주일 복음은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에 대한 말씀이었다. 가장 큰 계명은 마음과 목숨,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인데, 둘째도 이와 같은 계명으로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었다. 율법 학자들은 하느님 사랑을 위해서는 이웃 사랑을 포기해도 된다고 가르쳤는데, 주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도 사랑하는 신앙인, 사랑으로 사는 신앙인이 되라는 가르침이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말은 따르되, 행실을 따라 하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이스라엘의 회당 안에는 엘리야의 자리와 모세의 자리라는 특별한 자리가 있다. 엘리야의 자리는 할례를 할 때 사용하는 자리이며, 모세의 자리는 율법을 가르치는 자리이다. 회당 안에 있는 이 두 자리는 존경과 영광의 자리로서 아무나 앉을 수 없는 귀한 자리이며, 이 자리에 앉는 사람은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지고, 다른 이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이러한 존경과 영광의 자리에 앉으려고 하면서,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지지 않고, 모범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실을 따르지 말라고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높은 자리, 영광과 존경의 자리에 앉으려면 그에 걸맞게 살아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둘째,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꾸짖으신다. 그들은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여러 가지 세칙을 만들었고, 그 세칙 또한 구전 율법이므로 꼭 지켜야 한다고 하면서 생활 전반에 적용하여 지키기를 백성에게 강요했다. 그렇게 만든 율법의 세칙은 무겁고 힘겨운 짐이 되어 백성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백성을 돕고 배려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도움을 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백성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나무라기만 했다. 율법의 근본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그들은 사랑을 외면하고 백성에게 짐을 지웠다. 자신들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으면서.

율법의 근본은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들이 만든 안식일 규정을 과감히 깨트리셨다. 예수님께서는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 8)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시곤 하셨다(마태 12, 9이하)

 

셋째, 그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기 위해 일했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였다. 성구갑이란 성경 구절(탈출 13, 1-10, 탈출 13, 11-16, 신명 6, 4-9 신명 11, 13-21)을 넣은 상자로서 테필린(tefillin)’이라고 부른다.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성구갑을 왼팔과 이마에 묶고 기도하곤 한다. 심장이 뛸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하느님을 생각하고, 감사하기 위해 만든 갑이다. 또한 옷자락 술이란 지지트(zizith)’라고 하는데, 남자들이 겉옷의 네 귀퉁이에 매다는 청색 술이다. 유대인들은 이 술을 볼 때마다 이집트 탈출의 기적을 기억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을 실천하고 우상숭배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성구갑과 술은 하느님의 구원과 은총을 생각하도록 하는 소중한 도구였다. 그런데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성구갑과 옷자락 술을 크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하는데 사용했다.

예수님께서는 교만을 경계하며 겸손하게 섬기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 10)라고 가르치셨다. 겸손한 이만이 하느님께 나아간다. 하느님께 나아가는데 가장 큰 적은 자신이다. 자신을 드러내고 높이려는 사람은 하느님께 나아가기 어렵다.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만 주님을 따르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마태 16, 24).

 

마지막으로 윗자리,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인사받고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고 나무라신다. 예수님께서는 스승님과 아버지, 선생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고, 우리는 모두 형제라고 가르치신다. 목자는 오직 하느님뿐이고, 우리는 모두 양일 따름이다.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서 만드신 소중한 존재로서 평등하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그러므로 남 위에 올라서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섬기는 사람이 되고,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신을 낮추고, 다른 이를 섬기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 섬기기 위해 오셨고, 자신을 바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오롯이 본받아 자신을 낮추고 섬기며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