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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일 가해(마태 25, 1-13) 한 번 닫히면 다시 열리지 않는 문 본문
지난 주일 복음은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면서 군중에게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되 행실을 본받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그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율법의 세칙을 지키도록 짐을 지웠고,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하느님을 가리는 죄를 범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실천하면서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도록 우리를 초대하셨다.
오늘 복음은 열 처녀의 비유로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에서 혼인은 다음과 같이 진행했다고 한다. 먼저 신랑의 아버지가 아들의 신부를 고르고, 신부의 아버지에게 줄 금액을 흥정한다. 딸을 키운 비용과 딸의 노동력을 생각해서 보상해주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아들 이사악의 신부를 구하기 위해 늙은 종에게 낙타 열 마리에 온갖 선물을 실어서 보냈다(창세 24, 10). 재물이 없는 경우에는 노동으로 갚았는데, 통상적으로 3년 동안 노동력을 제공했다. 신부 대금이 정해지면 신랑이 예비 신부의 집으로 가는데, 신랑에게 문을 열어주고, 신랑이 신부 아버지에게 신부의 몸값을 주고, 포도주 한 잔을 신부에게 따라주어 신부가 이를 마심으로써 약혼이 성립된다. 그러면 신랑은 신부에게 반지를 주고, 집으로 돌아와 신부와 함께 살 집을 짓는다. 약혼 기간은 약 1년 정도인데, 집이 어느 정도 완성되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신부를 데려오도록 하여 혼인식을 한다. 신랑은 혼인 예복을 입고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으로 가는데, 친구들이 손에 횃불을 들고 길게 줄을 지어서 간다. 날이 더운 지방이기 때문에 중요한 일을 저녁에 했기 때문이다. 신부의 집에 도착하면 신랑 친구들이 뿔 나팔을 불어 동네 사람들에게 이를 알린다. 이때 신부의 집에서는 신부와 신부 친구 10명이 신부의 몸단장을 도와주면서 기다리다가 신부를 맞이하여 혼인 잔칫집으로 가는데, 신부 친구들은 솜뭉치로 횃불을 만들고 이를 올리브기름에 적셔서 불을 밝히면서 가는데, 이 불이 15분 정도 지나면 다시 기름에 적셔야 하므로 따로 기름을 꼭 준비해야 했다. 또한 호롱불인 경우 등잔의 용기가 작았기 때문에 여분의 기름통에 기름을 넣어서 다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신랑 친구들은 신부를 가마에 태워서 간다. 신부는 존경과 순결, 겸손을 상징하는 베일을 쓰고 신부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신랑이 마련한 ‘후파’라고 하는 붉은색 실크 차양 아래로 들어가서 혼인식을 한다. 혼인 서약은 랍비 앞에서 하는데, 랍비가 혼인 증인이 되어 혼인의 약정서(케투바)를 읽어주고 혼인식을 마친 후, 일주일 동안 잔치를 하는데, 이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이 증인 역할도 한다. 베일을 쓴 신부의 얼굴은 두 사람이 결혼 서약을 하고 남편과 아내가 됐음을 선언한 후에 벗을 수 있는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신랑은 신부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창세 29, 23-25).
‘열’이란 숫자는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로 유대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 인원이며, 여러 가지 종교 집회를 위해 필요한 정족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혼인에 10명이 들러리를 세우고, 장례 시에 10명이 곡을 하도록 했다.
오늘 복음의 열 처녀는 신부의 들러리로 신랑이 오면 불을 밝혀 혼인식장에 들어가야 할 신부의 친구들이다. 열 처녀는 겉보기에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혼인 예복을 입고 있었고, 등불을 들고 있었으며,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이 늦어지자 처녀들 모두 졸았고, 잠이 들었다. 여기까지 다른 점이 전혀 없다. 다만 어리석은 처녀 다섯은 등은 가지고 있었지만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을 갖고 있었다는 점만이 다르다. 한밤중이 되어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처녀들은 모두 등을 챙겨 신랑을 맞으러 나갔는데, 그때 기름이 떨어진 등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보니 기름을 가진 처녀들과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처녀들이 구분되었고, 기름을 가진 처녀들은 등불을 꺼트리지 않아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갔으나,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처녀들은 기름을 사러 갔다가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여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하고 간청했지만,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라고 답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로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주고자 하셨을까?
먼저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하라는 가르침이다. 슬기로운 처녀는 등과 함께 기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신랑이 밤늦게 오더라도 신랑을 맞이할 수 있도록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준비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는 등이 중요한 점을 알고 있었지만, 혼인식이 통상 이른 저녁에 하므로 기름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았다. 어리석은 처녀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고,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이 올 시각에 자신을 맞추었다.
등은 신앙이고, 기름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꼭 준비해야 할 어떤 것이다. 어떤 이들은 기름을 신앙에 따른 실천(야고 2, 17)이라고 해석한다. 주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믿음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가 기름이라고 해석했다. 기름을 성령이라고 해석하여 성령 충만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석하거나, 기름을 주님을 알고 느끼는 영적 친교라고 해석함으로써. 주님을 알고 체험해야 주님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주님을 알고 체험하지 못하면 주님을 맞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열 처녀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하는 모든 신앙인이다. 우리가 모두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되었으며, 미사에 참여하고, 기도한다. 겉보기에는 모두 똑같다. 전혀 다른 점이 없다. 그렇지만 신앙에 따른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성령 충만하지 않으며, 주님을 알고 체험하지 못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가르침이다. 나아가 주님을 맞이할 열망을 품으라는 가르침이며,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고, 영원한 생명을 염원하라는 가르침이다. 현세적 이익을 위해 기도하더라도, 그 기도가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을 간구해야 한다. 하느님 나라를 목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둘째, 졸다가 잠이 든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졸다가 잠이 들었고, 슬기로운 처녀는 잠이 들었어도 혼인식장에 들어갔다. 누구나 피곤하면 졸리고 잠든다. 신랑을 기다리다가 졸며 잠이 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기다리다가 때로는 잘못하고, 죄를 짓는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완전하게 창조하지 않으시고, 불완전하게 창조하셨다. 그래서 잘못을 저지르고, 죄를 짓는다. 문제는 잘못과 죄를 저지르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라, 잘못과 죄에 떨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고 회개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어떤 이들은 잠에 빠져 일어나지 않듯이, 죄악에 빠져 일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미끄러진 김에 쉬어가자고 하면서 죄에 푹 젖어 있으려고 한다. 그러나 신랑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잠에서 깨어나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처럼, 회개하여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라는 가르침이다.
셋째, 어리석은 처녀가 슬기로운 처녀에게 기름을 나누어달라고 청했지만, 기름을 나누어줄 수 없었다. 기름은 사랑의 실천, 성령 충만, 하느님과의 영적 친교로서,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서 다른 이에게 나누어줄 수 없다. 개인적으로 챙겨야만 한다.
넷째, 신랑이 오자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혼인식장에 들어갔고, 어리석은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다가 들어가지 못했다.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준비하여 왔고, “주인님,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지만, 주인은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 21)라는 말씀처럼 주님을 부르는 것으로는 한 번 잠긴 문이 다시 열리지 않는다. 이는 죽음을 상징한다. 이 세상은 단 한 번 사는 것이지, 여러 번 살 수 없다. 기름을 다시 준비할 수도 없고, 다시 준비해도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으며, 한 번 들어가지 못하면 영원히 들어갈 수 없음을 상징한다.
이제 연중 주일도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다. 교회는 오늘 열 처녀의 비유를 들려주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하도록 초대한다. 믿음도 중요하지만 믿음에 따른 사랑의 실천과 성령 충만한 삶, 주님과의 깊은 친교가 필요하다. 죄악에 빠지더라도 회개하여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며, 사랑의 실천, 영적 친교, 성령 충만은 지극히 개인적이므로 이웃에게 빌릴 수 없고, 개인이 마련해야 한다. 한 번 닫힌 문은 다시 열리지 않으므로 죽기 전에 회개하여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성령 충만하며 주님과 깊은 친교를 누리라고 우리를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