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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 나해(마르 1, 40-45) 깨끗하게 되어라

세심정 2024. 2. 10. 09:17

지난 주일 복음은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치유해 주시는 대목이었다. 그녀가 치유받기 위해서는 그녀의 사정을 주님께 알려드리는 이들이 필요했듯이, 우리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중재의 기도를 하자는 말씀, 주님께서는 손을 잡아 일으키시므로 주님 손을 꼭 잡고 일어나며, 소명과 사명에 충실한 삶이 주님을 위해 일하는 삶이라는 말씀, 주님께서 외딴곳에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기도를 통해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복음, 우리가 소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며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복음을 전하자는 말씀을 드렸다.

 

오늘 제1 독서는 악성 피부병이나 나병에 걸린 사람들에 대한 관리에 대한 말씀이고, 2 독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라는 말씀이며, 오늘 복음은 지난 주일 복음 다음 대목으로 예수님께서 나병환자를 치유하신 대목이다.

 

나병은 기원전 3,000년 전에도 발견되는 오래된 병으로서 1873, 노르웨이의 의학자 게르하르 아르메우에르 한센이 나균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치료할 수 없었다. 전염을 막기 위해 환자들을 격리할 따름이었다. 구약에서도 나병을 포함한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은 성 밖에서 격리되어 생활하며, 사람들이 곁에 와서 전염되지 않도록 소리쳐야 했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병자는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푼다. 그리고 콧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친다. 병이 남아 있는 한 그는 부정하다. 그는 부정한 사람이므로, 진영 밖에 자리를 잡고 혼자 살아야 한다.”(레위 13, 45-46) 이를 어기면 자칫 죽음에 이를 수도 있었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왔다. 율법에 따르면 그가 예수님께 갈 수 없다. 예수님 일행이 지나가면 그는 멀리서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 일행이 피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대인 접촉을 금한 율법 규정을 어기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병을 고쳐주시기를 청한다. 율법을 어기고 죽음을 각오할 만큼 그는 간절했고, 예수님께서 자신을 치유하실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 예수님은 나를 죽이지 않으시고 살리실 것이며, 내 병을 고쳐주시어 나를 온전하게 만드시리라는 믿음, 그래서 내가 병들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리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주님 앞에 나아갔다.

그는 무릎을 꿇고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는 하느님 앞에서 무릎을 꿇듯이 무릎을 꿇고, 천형인 나병을 고쳐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이심을 알고, 예수님이 곧 하느님의 능력을 지닌 분이심을 고백하며, 청한 것이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널리 퍼지지 않은 때이다. 그런데도 나병환자는 예수님을 알았고, 믿었고, 찾아왔고, 주님의 처분에 자신을 온전히 맡겼다.

알고, 믿고, 찾아가고, 맡김. 오늘 우리가 묵상해야 할 점이다. 알고 믿는 것은 마음과 정신의 활동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찾아가고 맡기는 실천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알지만 행하지 않고, 믿지만 따르지 않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자신의 이기심과 탐욕 때문에 앎과 믿음을 실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야고 2, 17). 믿음은 곧 실천이며 삶이다. 믿는 대로 산다.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야고 2, 20). 주님을 주님으로 믿고, 주님께 맡기며, 주님께서 주신 대로 받고 따라는 것이 참된 믿음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행하자.

 

둘째로, 우리는 나병환자의 간절함을 볼 수 있다. 간절함, 죽음을 각오할 정도의 간절함이 보인다. 이 간절함이 우리를 죽음에서 구하고, 생명을 가져다주며, 기적을 일으킨다. 나병환자는 율법을 어기고 주님 앞에 나올 정도로 간절하게 치유되기를 원했다. 그토록 간절히 치유되기를 원하는 나병환자를 보자 예수님은 너무나도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여기 가엾은 마음속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병자가 겪는 고통을 보고 그 고통에 동참할 정도로 그에 대한 자비와 사랑, 동정심이 너무 크다는 의미이다. 다른 하나는 그 환자가 그토록 고통받게 된 뒷배, 즉 악령의 활동에 대해 대단히 분노한다는 의미이다. 아픈 이들이 겪는 고통과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악한 세력에 대한 분노가 주님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하여, 그를 고쳐주시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는 말씀이다. 주님께서 그를 고쳐주지 않으실 수 없을 정도로 그는 간절했다. 바로 이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한다.

 

심상사성(心想事成)’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마음이 간절하게 바라면 그 일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산악인 엄홍길이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라고 한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6좌 등반(2007)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은 “(16좌 등반에) 도전하고 완등을 간절히 바라며 노력했기에 꿈을 이룰 수 있었다.”라고 하면서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꿋꿋이 꿈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 간절하게 원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궁즉통(窮則通)이다. 난관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고 새 길을 찾고자 혼신의 힘을 기울이면 궁함이 반드시 통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병환자처럼 간절히 주님을 찾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간절함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보시고 우리 아픔에 동참하시어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든 악령에 대해 분노하시어 그를 쫓아내고 치유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그의 믿음과 간절함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가 너무 불쌍하여 그에게 손을 내밀어 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율법은 나병환자와 접촉을 금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그에게 손을 대시며 그를 치유해 주셨다.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 더할 나위 없는 사랑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1코린 13, 7) 율법까지도 뛰어넘는 사랑, 그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며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그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었지만, 그에게 손을 대시면서 고쳐주실 정도로 그를 가엾이 여기셨다. 하느님은 우리를 그처럼 가엾이 여기시며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굳게 믿자. 하느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하느님께 나아가자.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하느님의 말씀은 힘이며 능력이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 12) 그러므로 하느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하느님 말씀으로 악과 대적하며, 하느님 말씀으로 악을 물리치고, 병을 고쳐야 한다.

 

주님을 알고, 믿고, 주님께 나아가 주님께 맡기자. 원하고 구할 때, 더없이 간절히 원하고 구하자.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내는 사랑이 하느님 사랑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심을 굳게 믿자.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로운 말씀, 하느님 말씀으로 무장하고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