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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요한 20, 19-31) 죄를 용서하고 하느님의 평화를 전하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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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요한 20, 19-31) 죄를 용서하고 하느님의 평화를 전하자

세심정 2024. 4. 5. 17:13

오늘 제1 독서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공동생활에 대한 말씀이다. 주님 부활을 체험한 교우들은 가진 것을 모두 내어놓고 필요한 만큼 나누어 살았는데, 오늘날 수도회가 그렇게 살고 있다. 2 독서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사랑하므로 그분 계명을 지키며, 악한 세상을 사랑으로 이긴다는 확신의 말씀이다.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오시어 평화와 기쁨을 주시는 말씀이다.

 

주간 첫날 저녁,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주간 첫날은 하느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신 첫날이며, 그날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죄에 물든 세상을 새롭게 재창조하신 첫날이다. 그래서 교회는 이날을 주님의 날이라고 부른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를 주셨다. 겁에 질려 있던 제자들, 밖에 나가 활동하지 못하고 두려워 숨어있던 제자들,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으로 사형당하셨으니까, 자신들도 반란자로 몰려 십자가형에 처해질까봐 두려워 떨고 있던 제자들이 너무 염려스러워,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먼저 나타나셨다.

오늘 첫째로 묵상할 점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염려하시어 그들에게 평화를 주시는 주님이시라는 점이다. 주님 때문에 박해받고, 주님의 일을 하다가 쫓기는 주님의 사람 곁에는 주님께서 함께 계시어 평화와 기쁨을 주신다. 열왕기 상권에 엘리야 예언자는 바알 예언자 450명을 처단하고 왕비 이제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는 40일을 걸어 호렙산에 가 동굴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두려움에 떠는 엘리야에게 주님께서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나타나시어 그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며 힘을 주셨다(1열왕 19). 하느님은 그처럼 당신 때문에 박해받고 쫓기는 이에게 나타나시어 힘과 용기와 평화를 주신다.

 

둘째,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라고 제자들을 파견하셨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셨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받았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죄를 용서하도록 파견하셨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사명이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 충만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창조하셨듯이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어 주셔서 성령으로 새롭게 창조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성령 충만하여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한다. 죄 사함을 널리 선포해야 한다. 복음 전파, 그것은 곧 죄 사함과 평화를 선포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주시는 용서와 평화를 널리 전해야 한다.

 

그러면 죄가 무엇인가? 죄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3, 17-18) 어떻게 죄를 용서받는가?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사도 22, 16)라는 말씀처럼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용서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세례가 중요하다.

 

셋째, 사도 토마스는 그 자리에 없었기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의 말을 전혀 믿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다음 주일,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시어 그에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손가락을 직접 넣어보아야 믿겠다는 토마스의 말을 이미 듣고 계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소리조차 외면하지 않으시고 귀담아들으신다. 아니 우리의 생각조차 이미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생각도 조심하고, 말도 조심해야 한다. 좋은 생각과 말, 거룩한 생각과 말, 감사의 생각과 말을 해야 한다.

 

넷째, 네 손가락을 넣어보고 의심을 버리고 믿으라는 주님 말씀에 토마스는 곧바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다. 복음은 토마스가 예수님의 상처에 손을 넣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는 주님 상처에 손을 넣지 않았으리라.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뵙자마자 주님이심을 깨닫고 너무 감격하여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으리라. 이 고백은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살아계실 때의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니라, 부활하시어 하느님이 되신 주님을 보았고 고백한 것이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살아계신 하느님이라는 고백이며,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 고백이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하느님의 평화를 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셨다. 성령의 힘으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고 사람들이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도록 하라고 명령하셨다. 두려움에 떨고, 고통에 신음하며, 죄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죄의 용서와 평화, 사랑을 선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성령께서 해주신다. 그러므로 성령의 힘으로 복음을 전하여 세상에 기쁨과 평화를 전하자.